프랑스 나치 괴뢰 정부의 악질 부역자로 전후 고위 관료와 하원 의원을 지낸 모리스 파퐁이 20년 전 오늘 투옥됐다.

2차 대전 후 드골 정부에서 파리 시 경찰국장(1958), 데스탱 정부에서 예산장관(1979~81)을 지낸 나치 부역자 모리스 파퐁(Maurice Papon,1910~2007)이 1999년 10월 22일 비로소 투옥됐다. 반인륜 범죄 혐의로 처음 고발된 지 16년이 흐른 뒤였고, 의혹이 처음 언론에 보도된 뒤로부터 만 18년 만이었다. 그의 거짓말과 법적인 방어가 그토록 집요했다.

파퐁은 나치 괴뢰 비시 정부의 보르도 시 2인자 겸 치안 책임자로서 1942~44년 유대인 1,670명(어린이 223명 포함)의 멸절수용소 강제 이송을 지휘했다. 나치 패전이 확실시되던 1944년 6월 무렵 그는 과거 세탁을 시작했다. 나치 정보를 레지스탕스에 흘려주는 식으로 자유 프랑스 진영을 도운 것이다.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전후 드골 정부에서 그는, 일부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했다. 코르시카 지사, 알제리 콘스탄틴 지사, 파리 경찰국장, 프랑스령 모로코 총독…. 드골을 도와 1958년 제5공화국을 연 공로로 레지스탕스 전투십자훈장(1958)과 레지옹 도뇌르 훈장(1961)도 받았다. 그는 남부항공이라는 기업 CEO와 세르주 하원 의원(1968~78)을 지낸 뒤 예산장관이 됐다.

그의 나치 부역 혐의는 81년 5월 6일 언론에 처음 폭로됐다. 한 역사가가 지역 정부 문서고에서 그가 최종 서명한 유대인 강제 이송 문건 더미를 발견한 거였다. 데스탱의 대통령 재선 선거 불과 나흘 전이었다. 파퐁은 비열한 정치공작이라고 반박했고, 명백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선거는 미테랑의 승리로 끝났다. 고소ㆍ고발과 무고 및 명예훼손 역고소가 이어졌고, 검찰의 수사절차 하자로 한 차례 조사 자체가 중단됐다가 새로운 혐의의 고발로 재개되기도 했다. 그는 1998년 2월에야 10년형을 선고받았다.

파퐁은 공무원으로서 상부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며, 멸절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알지도 못했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항소심 공판 직전인 1999년 10월 21일 스위스로 도주했다가 하루 만에 체포ᆞ송환돼 수감됐다. 심장병을 앓던 그는 건강 문제로 2002년 9월 가석방됐고, 2007년 2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달고 묻혔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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