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칠레 반정부 시위가 연일 거세지고 있다. 격화하는 민심에 칠레 정부는 비상사태 선포에 이어 결국 요금 인상 철회를 발표했으나, 오히려 시위는 칠레 전역으로 확산하는 등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방화로 인한 인명피해와 슈퍼마켓 약탈 등 혼란도 이어지고 있다.
현지 매체와 외신들에 따르면 20일(현지시간) 칠레 정부는 전날에 이어 이틀째 수도 산티아고에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령했다. 통행금지 시간은 이날 오후 7시부터 월요일(21일) 오전 6시까지로, 밤 10시∼오전 7시였던 전날보다 길어졌다.
또 산티아고에 선포됐던 비상사태도 수도권 전역과 발파라이소, 코킴포, 비오비오 등 다른 지역으로 확대됐다. 칠레에선 야간 통금도, 비상사태 선포도 지난 1973∼1990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부독재 시절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시위 과정에서 체포된 사람은 현재까지 1,46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말 이틀 동안 시위가 격화하면서 인명피해도 속출했다. 전날(19일) 산티아고에서 슈퍼마켓 방화로 최소 3명이 숨진 데 이어, 이날은 의류 창고 화재로 5명이 숨졌다고 현지 일간 엘메르쿠리오는 전했다. CNN 칠레는 행인 1명이 경찰차에 치여 숨졌다고도 보도했다. 위독한 부상자들도 있어 이번 소요 사태로 인한 인명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위는 지난 6일 칠레 정부가 지하철 요금 인상을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정부는 유가 상승과 페소화 가치 하락을 이유로 산티아고에서 교통 혼잡 시간대의 지하철 요금을 기존 800칠레페소(1,328원)에서 830칠레페소(1,378원)으로 3.75% 높인다고 발표했다. 한화로 치면 약 ‘50원’이 인상된 셈이다.
그러나 이번 시위의 배경에는 단순한 지하철 요금 인상이 아니라 소득 불평등의 심화, 낮은 급여와 급등하는 생활비, 잦은 공공요금 인상 등 보다 깊은 경제 문제가 자리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칠레 발파라이소 대학의 정치학자 기예르모 홀츠만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경제에 대한 좌절, 물가, 전기, 교통 가격 상승, 그리고 범죄와 부패와 같은 요소들이 축적돼 이번 폭동이 발생했다”며 “지하철 요금은 마지막 지푸라기였다”고 지적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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