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손을 일찌감치 떠난 시리아 북동부의 미래가 이제 러시아에 달렸다. 터키와 쿠르드족 간의 ‘5일 휴전’에도 불구하고 교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휴전 시한이 끝나는 22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나 시리아 사태를 논의한다. 터키가 요구하는 ‘안전지대’ 설치가 이날 협상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쿠르드족은 20일부터 시리아 북부 철수를 본격화했다. AFP통신은 쿠르드민병대(YPG)가 주축을 이루는 시리아민주군(SDF) 소속 부상자와 전투원들을 태운 호송차가 이날 시리아 북부의 국경도시 라스 알아인을 완전히 떠났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중재한 철수 계획에 따라 쿠르드 측이 접전 지역을 벗어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SDF의 고위 지도자 레두르 칼리는 전날 AP통신에 시리아 북부 도시 라스 알 아인에서 탈 아비다드까지 이르는 동서 길이 120㎞의 접경지로부터 30㎞ 안쪽으로 철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앞서 미국과 터키는 17일 오후 10시부터 120시간 안에 YPG가 시리아 북부의 ‘안전지대’에서 철수하고, 이 지역을 터키군이 관리한다는 조건하에 5일 휴전에 합의했다. 안전지대란 터키와 시리아 북동부 국경으로부터 시리아 쪽으로 30㎞가량 들어온 지역을 말한다. 터키는 자국 내 시리아 난민 100만~200만명을 이곳으로 이주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YPG를 겨냥해 “(약속한 시일 내로 철수하지 않으면) 테러리스트들의 머리를 짓뭉개 버리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터키와 쿠르드 민병대 간 휴전 합의가 불안하게 유지되면서 20일에는 터키 병사 1명이 쿠르드 민병대의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터키 국방부가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안전지대의 동서 길이를 두고 양측의 주장이 엇갈린다는 점이다. 터키는 동쪽 하사카부터 서쪽의 코바니까지 북동부 국경 전체에 가까운 지역을 안전지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쿠르드족과 미국 측은 120㎞ 구역만 협상 대상에 포함됐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19일 미 CNN 방송은 “백악관이 ‘시리아 방정식’에서 교묘하게 빠져나오면서, 좋든 나쁘든 이 지역의 군사ㆍ정치적 혼란의 책임은 이제 푸틴에게 달렸다”고 진단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미군 철수가 결정되자, 즉각 쿠르드족과 친러 정권인 알아사드 시리아 정부의 중재자로 나서 시리아 정부군을 이 지역에 배치해 완충 역할을 하도록 했다. 또 시리아 북부 도시 만비즈에는 러시아 군사경찰을 직접 배치해 터키군과 시리아 정부군ㆍ쿠르드 간 군사 충돌을 막기도 했다.
러시아가 사태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모양새다. 푸틴은 그간 시리아와 터키 정부 모두와 긴밀한 대화 채널을 유지해 왔다. 또 트럼프에게 사실상 버림받은 SDF가 바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곳도 러시아였다. 터키는 오는 22일 YPG뿐 아니라 시리아 정부군을 철수시키는 문제도 러시아와 논의할 방침이다. CNN은 “(미국이 중재한 ‘5일 휴전’이 아니라) 이날 협상이 이 불안정한 지역의 미래를 결정할 진짜 협상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이슬람국가(IS) 부활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시리아 철군의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안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해 온 공화당의 미치 맥코넬 상원 원내대표조차 19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철군은) 중대한 전략적 실수”라며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같은 날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시리아 북부에서 철수하는 미군이 전원 이라크 서부에 배치될 것이며 이들이 대테러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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