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광장’전
서울ㆍ덕수궁ㆍ과천관서 첫 동시기획전
미디어아트 그룹 신승백·김용훈 작가의 설치 작품 ‘마음’.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을 기념한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 전의 일환으로 지난 달 7일부터 서울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관람객의 표정을 분석한 결과를 바닥에 놓인 열다섯 개의 오션드럼이 파도소리로 표현한다. 김지은 기자

마음에서 파도 칠 때가 있다.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천둥번개가 치기도 하는 심연의 일이다. 말갛게 개어 봄볕에 평온하기만 하다면, 심심할까. 마음을 파도 소리로 표현한 체험형 설치 미술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컴컴한 225㎡(약 68평) 공간에 들어서면, ‘쏴-, 쑤우우쏴---‘ 내 마음이 파도가 되어 울린다. 360도 회전하는 인공지능(AI) 카메라가 관람객의 표정을 읽고 감정을 분석해 파도 소리로 변환하는 거다. 바닥에 놓인 15대의 오션드럼이 만들어 내는 음향이다. 움직이는 드럼 위에서 쇠구슬들이 굴러다니며 소리를 빚는 ‘바다소리 드럼’이다.

◇“광장은 마음이 모이는 바다”
설치미술 작품 ‘마음’을 만든 신승백(왼쪽)· 김용훈 작가를 지난 16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실에서 만났다. 김지은 기자

유럽에서 주로 활동해온 미디어아트 그룹 신승백(40)ㆍ김용훈(39) 작가가 만든 이 작품의 이름은 ‘마음’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ㆍ국현)이 개관 50주년을 맞아 마련한 대규모 기획전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광장전)의 일환이다. 지난 16일 만난 이들 작가는 “광장은 곧 감정이 모여드는 바다라고 생각했다”며 “우리는 광장에서 자유를 향한 열망을 외치고, 월드컵 때는 승리의 열정을 나눴으며, 국가적 재난엔 슬픔을 함께 했다”고 설명했다.

바다를 차용한 건 최인훈의 소설 ‘광장’ 덕분이다. 국현의 의뢰를 받고 다시 읽은 소설에서 바다가 새삼 눈에 들어온 거다. 한국전쟁 후 포로가 된 주인공 이명준은 돌아갈 나라로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을 택하고 배에 오르지만, 끝내 바다에 몸을 던진다. 김 작가는 “주인공이 생각하는 이상적 세계, 즉 광장이 바다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작가 두 사람 모두 바다를 좋아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작품 ‘마음’을 구상하고 제작하는 데엔 7개월 정도 걸렸다. 최근 인지한 100명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평균치를 AI가 분석하고 그 결과를 오션드럼이 소리로 바꾸는 방식이다. 카메라는 360도를 2, 3분에 한번씩 천천히 돌면서 여러 관람객의 얼굴을 인식해 표정을 진단한다. 감정은 행복, 슬픔, 무서움, 분노 중의 하나가 되도록 했다. 분노의 감정이 잡히면, 높고 센 파도 소리가 들린다.

지난달 7일부터 시작된 이 전시에서 가장 많이 표현된 건 어떤 감정일까. 의외로 슬픔이었다. “아마도 미술관이라는 조용한 공간에 들어와 감상을 할 때 표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세상이 좋아지면 행복의 수치가 더 올라가지 않을까요?”(김 작가) 점점 어려워지는 경제, 격렬하게 양분되는 여론 탓에 웃을 일이 별로 없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들은 관람객이 전시를 체험하면서 마음의 중요성을 새겨보기를 바랐다. “나의 마음도 이 파도 소리에 포함된 것이니까요. 결국 어떤 상황이든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개관 50년 맞아 3개관서 첫 동시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개관 50주년 기념전에서 처음 대중에 선보이는 최재덕의 ‘한강의 포플라 나무’(1940년대, 캔버스에 유채, 46×66cm,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현은 서울관뿐 아니라 덕수궁관과 과천관에서도 광장전을 진행 중이다. 국현 개관 이래 3개관에서 통합 기획전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광장과 함께한 한국미술 100년을 조명하는 취지로 회화, 조각, 설치 등 290여 명의 작품 450여 점을 선보인다. 서울관과 덕수궁관은 내년 2월 9일까지, 과천관은 내년 3월 29일까지 전시가 이어진다.

지난 17일부터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1부 전시는 의(義)를 화두로 19세기말 개화기부터 광복에 이르기까지 80여명의 작품 120여점을 소개한다. 일제강점기 우리 고유의 미학을 찾으려 한 작가로 거론된 최재덕의 ‘한강의 포플라 나무’(1940년대), ‘원두막’(1946년)이 처음 대중에 공개된다.

같은 날 개막한 과천관의 2부 전시는 1950~2019년까지의 작품들이다. 1987년을 상징하는 최병수 작가의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 최 작가가 학생들과 완성한 ‘노동해방도’가 걸렸다. 이한열 열사가 스러질 당시 신었던 오른쪽 운동화도 이한열기념관의 협조로 전시됐다. 이를 비롯해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유영국, 서도호, 이불,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등 200여 명의 작품 300여 점을 볼 수 있다.

서울관에서 지난달 7일부터 시작한 3부에선 오형근, 송성진, 함양아, 홍승혜, 에릭 보들레르, 날리니 말라니 등 작가 12명의 작품 23점을 전시 중이다. 우리말 조사인 조차와 조수 간만의 차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은 송성진 작가의 ‘1평조차(潮差)’는 작가가 로힝야 난민촌을 방문한 경험을 토대로 경기 안산의 갯벌 위에 집을 짓고 조수나 기상에 따라 집이 넘어지고 떠내려가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과 사진, 집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재난의 대피처로 사용되는 체육관을 소재로 사회시스템의 작동방식을 돌아보게 하는 함양아 작가의 영상 작품 ‘잠’도 흥미롭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 만든 작품이다.

국현이 야심차게 기획한 대규모 전시지만, 작품들 사이에서 맥을 찾기는 쉽지 않다. 전시의 주제만 ‘광장’일 뿐 유명 작가의 작품 위주로 백화점 전시를 했다는 비판은 국현이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광장’전 3부에서 전시 중인 함양아 작가의 영상 작품 ‘잠’(2016)의 한 장면. 재난 때 대피처로 사용되는 체육관을 소재로 만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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