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영화제를 통해 알게 된 라오스계 프랑스인이 있다. 페이스북 친구라서 근황이 자연스레 전해진다. 이 ‘페친’이 최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한 행사에 참여해 페북에 사진과 글을 올렸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 앞바다를 ‘일본해’라고 지칭했다. 조금은 긴장하며 댓글을 살폈다. 역시 누군가 정중하게 지적을 했다. 일본해는 일본이 주장하는 표기 방식이며 한국에서는 ‘동해’라 부른다고. 한국인들이 이 글을 보면 화낼 것이라고. 그러니 고치라고. 한국인이었을까.
□ 댓글 작성자는 발음 방법을 알 수 없는 이름의 소유자였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살고 있는 젊은 이슬람 여성이었다. 자기소개란에 한국을 사랑한다고 쓴 이 여성은 역시나 K팝 등 한류 팬이었다. 한국 대중문화를 사랑하다 보니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를 알게 되니 한국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한류 팬이 적지 않다. 미국이 디즈니와 맥도널드 등을 앞세워 문화제국주의를 구축한다는 비판이 나오곤 하는데, 한류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식민 역사를 거친 소국의 문화가 세계인을 사로잡는, 극히 드문 이 현상은 달리 해석해야 한다.
□ 한류 스타 관련 영문 기사나 유튜브 동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 해외 팬들이 남긴 글 중에 ‘Unnie(언니)’ ‘Oppa(오빠)’ 등 한국어 발음을 옮긴 단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K팝 아이돌 덕분에 생겨난 새로운 단어란 의미에서 ‘돌민정음’(아이돌과 훈민정음을 조합한 신조어)이라 불리는 것들이다. 영국 공영방송 BBC가 지난달 페북에 ‘오늘의 단어’로 ‘Kkondae(꼰대)’를 소개하는 등 부정적인 의미의 한국말도 해외에 알려지고 있긴 하나 한국 문화가 세계에 퍼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 중 하나다.
□ 어느 나라나 쇼비즈니스 세계는 냉혹한데, 한국은 유독 잔혹하다. 설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한국 대중문화가 앓고 있는 오랜 지병의 결과다. 살인적인 경쟁을 견뎌야 스타가 될 수 있는 아이돌 문화와 스타에 대한 선정적 보도, 까닭 모를 적개심으로 가득한 악플 등이 상호작용하며 벌어진 참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이 설리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페북에 게재했는데, 수많은 댓글 중에서 특히 마음 아프면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짧은 글이 있었다. 베트남 젊은 여성이 쓴 ‘Rest in Peace, Unnie’(고이 잠들길, 언니)였다. 모두의 반성이 필요한 때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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