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참존 내부자료ㆍ증언으로 본 부실 실태
 회계법인이 보고한 적정가는 1241억, 당일 김광석 회장 지시로 2032억으로 
 선납 임대료 못내 입찰보증금 102억 날려… “주먹구구 경영에 사세 무너져” 
 아들 수입차 사업 지원에 420억 날리고, 동생ㆍ처남은 비싼 값에 물품 납품 
 참존 “회장 일가와 거래 줄여 매출 올라”, 김 회장은 “법 절차따라 책임지겠다” 

서울 대치동 참존 사옥 5층에는 약사 출신으로 이 회사 창업자인 김광석 회장 명의로 된 창업이념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유리액자 속에는 진한 검정색 붓글씨로 ‘우리 모두 근검 절약하며 끊임없이 창조 개선해 나가자’는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진 가운데, ‘참존이여 영원하라’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창업자 다짐과는 달리 이 회사는 근검 절약하지 않았고, 부실경영으로 현재는 자산 대부분이 팔리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상황이다. 기초화장품의 최고 강자로 인정 받으며 영원할 것 같았던 참존이 창업 35년 만에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린 이면에는 ‘가족회사’라는 특수성 하에서 오너 일가가 주먹구구 경영과 방만경영을 일삼은 결과라는 게 참존 내부인사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한국일보는 한 달 동안 참존 내부인사들과 주변인사들을 심층 취재해 ‘청개구리 신화’를 쌓으며 업계의 모범생으로 주목 받았던 참존이 수백억 원대 빚을 갚지 못해 경영권까지 빼앗길 상황에 놓이게 된 이유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해봤다. 참존의 흥망성쇠 속에는 기업들이 지양해야 할 불합리한 의사결정의 민낯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 회장은 거액의 횡령과 배임 혐의로 현재 검찰과 경찰에서 동시에 수사를 받고 있다.

김광석 참존 회장이 서울 대치동 참존 사옥 1층 앞에 서있는 모습. 기독교 신자인 김 회장은 회사 현관 앞 벽면에 성경 구절을 붙여 놓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존 제공

회장 말 한 마디에 ‘1,000억 더’

2015년 1월 참존은 화장품업계뿐 아니라 재계 전체의 주목을 받았다. 중소중견기업 몫으로 배정된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사업에 도전하기로 결정한 참존이 5년간 면세점을 운영하면서 지불할 임차료로 예상 낙찰가를 훨씬 뛰어넘는 2,032억원을 써냈기 때문이다. 입찰가에서 경쟁회사를 압도해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됐지만, 1년 매출이 500억~700억원대에 불과한 회사가 감당할 수준의 금액이 아니었다. 김 회장의 결정은 ‘승부수를 띄웠다’는 칭송보다는 ‘미스터리’로 평가 받았다.

속사정을 들여다 보니 업계의 의심 어린 시선은 근거가 없지 않았다. 한국일보가 당시 삼일회계법인이 참존에 제시한 면세점 입찰 최종보고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회계법인은 1,241억원을 적정 입찰가격으로 산정했다. 이 보고자료는 입찰(2015년 1월29일) 직전에 작성됐으며, 참존이 회계법인에 의뢰해 산출된 가격이다. 입찰가격 범위를 넓혀도 최소 1,073억원, 최대 1,522억원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당시 입찰에 참여한 경쟁업체들도 참존이 산정한 적정가격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낮은 금액을 입찰금액으로 써냈다.

그러나 입찰 당일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참존이 적정 가격의 2배에 가까운 2,032억으로 입찰금액을 대폭 높인 것이다. TFT 소속의 한 직원은 “회계법인 및 내부 임원들과의 협의를 바탕으로 1,300억원 내외를 입찰예상 금액으로 산정해 준비했지만, 당일 아침 김광석 회장 지시로 갑자기 금액이 변경됐다”고 털어놓았다. 김 회장이 어떤 근거로 금액을 높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임직원들 사이에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 회장이 당일 아침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금액을 확 높였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고 한다.

김 회장이 회계법인의 보고서나 TFT의 협의 결과를 무시하고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린 대가는 혹독했다. 참존은 당시 입찰보증금(102억원)조차 동향(경남 하동군) 기업인인 정우현 회장의 미스터피자에서 빌릴 정도로 자금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다. 결국 선납해야 할 6개월치 임대보증금 277억원을 내지 못해 면세점 선정 20여일 만에 사업자격을 박탈 당했다. 현금으로 임대보증금을 납부할 능력이 안됐던 참존은 보증보험회사에서 보증서까지 내주지 않자, 결국 입찰보증금 102억원을 날렸다. 중견기업에 적지 않은 돈인 100억원대 자금을 허공에 날린 셈이다. 참존 관계자들은 “낙찰가를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자금조달계획에 대한 별다른 고민도 없이 주먹구구 경영을 한 결과였다”며 “면세점 사건은 화장품업계의 경쟁격화로 가뜩이나 기울어가던 사세가 완전히 무너진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저작권 한국일보]김광석 참존 회장 가족 사업 / 강준구 기자/2019-10-20(한국일보)

한눈 팔다가 본업까지 휘청

비슷한 시기 참존의 뇌관은 다른 곳에서도 터졌다. 김 회장의 아들 3명은 사업 다각화를 이유로 참존모터스, 참존서비스, 참존임포트 등 화장품사업과 무관한 수입자동차 판매사업을 이어오다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사실상 문을 닫았다. 큰아들이 대표이사를 맡고, 둘째와 셋째 아들이 이사, 며느리가 감사를 맡는 등 전형적인 가족경영을 했다. 더 큰 문제는 김광석 회장이 이들 3개 수입차 회사를 지원하기 위해 담보도 없이 참존의 회삿돈 422억원을 대출해주면서 참존의 부실로 이어진 데 있다. 수입차 사업의 실패로 참존은 원금과 이자를 받을 길이 없어진 것이다.

참존은 면세점 사업과 수입차 사업의 잇따른 실패로 사옥으로 사용하던 강남의 알짜 부동산 3곳을 차례로 매각했다. 2015년 4월 청담동 빌딩을 230억원에 SM엔터테인먼트에 매각했고, 같은 해 7월에는 청담동의 또 다른 빌딩을 138억원에 후크엔터테인먼트에 팔았다. 마지막 남은 대치동 사옥도 2016년 4월 홍콩 투자회사에 600억원에 매각한 뒤, 현재는 해당 건물을 임차해 쓰고 있다. 사옥으로 쓰던 건물 3곳이 1년 만에 모두 남의 손으로 넘어간 것이다.

본업은 제쳐두고 한눈을 파는 사이 참존 실적도 눈에 띄게 하락했다. 참존은 외환위기에도 끄덕 없이 영업이익률 10%을 넘을 정도로 업계 정상 자리까지 넘봤지만, 2014년 적자로 돌아선 뒤 지속적으로 매출이 하락했다. 그런데도 김 회장의 급여는 계속 올라 2015~2017년에는 1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다. 김 회장이 받은 급여는 전체 300여명 임직원 급여의 10%에 가깝다.

김 회장 동생들도 참존에 기생해 사업을 이어갔다. 참존화장품 방문판매사업을 하던 동생은 12억원 상당의 상품을 가져간 뒤 상품대금을 갚지 않았다. 다른 동생은 화장품 용기의 플라스틱 사출 업무를 맡았고, 또 다른 동생은 김 회장의 개인 부동산을 관리했다. 처남들도 가세했다. 참존 화장품 원료를 수입해 판매 하거나 박스제작을 중개하는 업무를 맡는가 하면 참존 상표를 무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참존 관계자는 “동생이나 처남 운영 회사들이 다른 회사보다 비싸게 물건을 공급하는 등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엄청난 경영 비효율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김 회장은 비서실장을 지낸 고향 후배를 챙겨주기 위해 회사 돈을 무단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영업활동이 전혀 없는 미국법인에 후배를 법인장으로 앉히고 3년 동안 1억1,000만원을 지급했다. 국세청은 2017년 세무조사 당시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해 추징하기도 했다.

회사 자산은 사라졌지만 임직원의 노력으로 줄어들던 참존 매출은 지난해 반등했고 영업이익도 흑자로 돌아섰다. 김 회장은 이를 자신의 성과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참존 측은 “김 회장 가족들이 운영하는 회사들과 거래를 줄이고 전문경영인들이 매출처를 적극 발굴한 결과”라고 밝혔다.

김 회장 측은 부실경영 지적과 관련한 한국일보 질의에 “검찰과 경찰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김 회장 측은 “수사에는 성실히 협조할 생각이며, 법 절차에 따른 결과에 대해선 기꺼이 책임을 질 생각”이라고 알려왔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강철원 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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