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선근무예비역 근무환경 개선에 나선 정소연 변호사
“회사와 국가가 모두 방임하는 ‘폐쇄적 공간’인 배에서 이뤄진다는 게 승선근무예비역 괴롭힘의 본질이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의 법률사무소 ‘보다' 사무실에서 만난 정소연(36) 변호사는 승선근무예비역 문제에 대해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정 변호사는 지난해 3월 ‘괴롭힘을 참기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화학물질운반선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故) 구민회씨 사건을 맡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노동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정 변호사는 승선근무예비역의 인권침해 사례도 모으고 있다. 이들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자료집 제작이 목표다. 하지만 승선근무예비역의 제보는 중간에 끊기는 경우가 많다는 게 큰 어려움이다. 정 변호사는 “해양대학교 4년 동안의 의무적인 기숙사생활, ‘배’라는 폐쇄적인 공간, 벗어날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의 근무환경이 이들을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특수한 근무환경은 피해를 당한 승선근무예비역들이 회사가 제시한 비용에 쉽게 합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초에도 선상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승선근무예비역이 있었지만 소송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정 변호사는 “피해자가 신고를 하지 못해도 잡아낼 수 있도록 공적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병무청과 해양수산부 등이 내놓은 대책부터 불충분하다고 꼬집었다. 제일 보완되어야 할 부분은 ‘예측가능성’이다.
군 복무를 위해 배에 오른 승선근무예비역들이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육지에서의 ‘무한 대기’이기 때문이다. 3년을 배에서 보내야 복무기간이 끝나는 만큼 육상 대기는 승선근무예비역을 통제하는 주요한 수단 중 하나로 꼽힌다. 정 변호사는 “육지에 몇 개월 있으면 꼭 배를 타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야 업체들이 갑질을 못한다“며 승선근무예비역들이 육지에 내릴 때마다 기록하고 신고하는 방안도 함께 제안했다.
정 변호사는 열악한 근무환경을 방치한 해운업체를 제재할 수 있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손이 부족한 해운업체에 가장 쉽게 타격을 주는 방법이 배정인력 감축인데, 병무청이나 해수부는 좀처럼 이를 강화하기 위해 손을 대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병무청 훈령에 신설된 ‘해운업체 등 평가 시 가점 및 감점요소 평가기준‘에 따르면, 병무청은 규정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경우와 민원야기, 부정적 언론보도 발생 시 건당 20점을 감점한다. 반면 승선 전 근로권익,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으면 10점 감점에 불과하다. 정 변호사는 “관리감독하는 사용자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기보다는 병무청을 번거롭게 하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익명성 보장이 어려운 선박 근무의 특성 상 신고자 보호 방안도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정 변호사는 “신고자가 배에 타고 싶은지, 어떤 배에 승선하게 되는지 미리 알려줘야 하며 타고 싶지 않다면 최소한 조치가 끝날 때까지 대기하는 대신, 그 기간을 복무기간에 산입해줘야 한다“고 밝혔다.
조소진 기자 soj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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