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업무관련 질환 파헤치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지난해 4월 25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민주노총 4.28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 결의대회 모습. 연합뉴스

남편은 정말 일 만했다. 새벽에 들어와 옷만 갈아입고 나갈 정도로 일이 많았지만 남편은 “일이 많다는 것은 회사에서 나를 인정해주는 것”이라며 좋아했다. 10년 전 이 회사에 경력사원으로 들어가 회사에 뼈를 묻겠다고 한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랬던 남편이 지난해 10월부터 이상해졌다. 집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 늘었는데 잠을 통 이루지 못했다. 난생처음 남편 입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소리가 나왔다. 무슨 일 있냐고 묻자 농담이라던 남편은 올 3월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남편이 죽고 나서 알았다. 남편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회사에 큰 손해를 입혔다는 것을. 팀을 옮겼지만 적응을 하지 못하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 것도. 새벽에 나가고 새벽에 들어오고 회사밖에 모르던 남편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었던 아내 A(43)씨는 대학병원 직업환경의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존경할 만한 선배, 알고 보니 지옥처럼 살다 갔다”

마흔여덟 살에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등진 남편의 사인은 경찰도 검찰도 아닌 의사를 통해 밝혀졌다. A씨 남편은 ‘과로사’였다. 죽은 남편을 대신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산재) 신청을 하기 위해 올해 5월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를 찾은 A씨는 외래 상담 내내 눈물을 쏟아냈다. 김 교수는 업무관련성 평가를 한 후 소견서를 작성해 남편에 대한 A씨의 산재 신청을 도왔다. 결국 근로복지공단은 올해 9월 A씨의 남편이 업무와 관련해 우울증이 생겼고 증상이 악화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을 인정했다. 우울증과 업무관련성이 인정된 것이다. 김 교수는 산재인정을 받은 자살자들에 대해 “‘성실하고 회사밖에 몰랐던 사람’ ‘존경할 만한 선배’라는 평판을 받아 왔지만 유서를 보면 ‘죽지 않고는 지옥처럼 힘든 삶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이 가득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드라마 ‘닥터탐정’ 포스터. SBS 제공
◇업무 관련 질환 의심되면 직업환경의학과로

최근 산재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이 문제를 다룬 TV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일부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도 직업환경의학과는 일반인에게 낯선 진료과다. 남편이 허망하게 목숨을 끊지 않았다면 A씨도 이곳의 문을 두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은 ‘어디가 어떻게 아프냐’에 집중하는 다른 진료과 의사들과 달리 환자가 ‘무슨 일을 하느냐’에 초점을 맞춘다. 1988년 7월 2일 공장에서 수은을 온도계에 넣는 일을 하다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15) 사건도, 그를 치료했던 의사들이 이 간단한 질문을 던졌으면 최악의 사태로 악화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소년은 증세가 악화돼 전신발작까지 일어나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했지만, 누구 하나 어떤 일을 하는지 물어본 의사는 없었다. 당시에는 의료계에서도 직업병을 진단, 치료할만한 체계적인 진료시스템이 없었다. 문송면군 수은중독사건과 같은 시기에 발생한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사건 등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조차 모른 채 쓰러진 노동자들의 죽음을 계기로 직업병과 관련된 체계적인 조사와 진료를 위해 만들어진 진료과가 직업환경의학과이다.

3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는 의사는 흔치 않다. 2016년 1월 메탄올 중독으로 끝내 시력을 상실한 B(28)씨는 휴대폰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에서 일했다. 기계가 깎아 낸 알루미늄판의 버튼 모양에 불량이 있는지 검사하고 제품에 남은 쿨링제를 직접 닦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 전까지 어떤 병원에서도 B씨가 왜 속이 메스꺼운지, 온 몸에 힘이 없는지 등 B씨의 증상이 직업과 연관돼 있음을 주목한 의사는 없었다. 대학병원에서 메탄올 중독이 의심돼 검사를 한 결과, B씨 소변의 메탄올 농도는 7,632㎎/L로 기준치의 약 13만 배에 달했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이 꼭 산재를 신청하려 하지 않더라도 질환이 업무와 관련한 것으로 의심된다면 직업환경의학과를 찾으라고 말하는 이유다.

직업환경의학 현황. 박구원 기자
◇“우릴 찾으면 당신이 왜 아픈지 알 수 있다”

“선생님, 저 할 말이 있는데요.”

2013년 6월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부센터장은 대구의 학교 비정규직 노조의 요청으로 조리급식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근골격계 질환 교육을 실시했다. 교육이 끝나자 40대 중반 여성 C씨가 상담을 신청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급식 조리실에서 5년 남짓 일을 한 이 여성은 1,000명이 훌쩍 넘는 학생들의 식사를 예닐곱 명의 조리원이 도맡았다고 했다. 5년간 아침 8시 30분~오후 4시 30분 하루 8시간 동안 아이들이 먹을 밥과 찬을 준비하고 배식하고 치우는 일을 하다 팔에 문제가 생겼다. 팔을 어깨 위로 들어 머리 감기조차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은 그는 회전근개 파열 진단을 받았지만 정작 동료들 눈치 때문에 수술 날짜를 잡지 못했다. “너만 아픈 것이 아니다, 다들 힘들다”며 그녀의 행동을 탐탁지 않게 본 동료들은 산재를 신청한다고 하자 오히려 그를 홀대했다. 류 부센터장은 “상담만 받아도 자신이 왜 아픈지 알 수 있다”며 “아픈 건 근로자의 잘못이 아니라 업무 때문”이라고 말했다.

근로자가 산재를 신청하기 위해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를 찾아와 상담을 한 후 업무관련성 평가를 의뢰하면 전문의들은 유기화합물, 중금속, 분진, 산과 알칼리, 진동 등 신체에 부담을 주는 작업이나 물질뿐 아니라 교대작업 장시간 노동, 직무 스트레스, 직장 폭력 등과 같은 사회적 요인도 파악한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을 ‘탐정’이라고 부르는 건은 이 때문이다. 김형렬 교수는 “질환과 업무관련성을 객관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근로자 컴퓨터 로그인 상태, 교통카드 사용이력은 물론 심지어 자녀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까지 조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재 규명에는 현실적 한계도 명확하다. 개인이 업무관련성 평가를 의뢰했을 경우 전문의가 사업장을 방문해 현장조사를 진행해야 하는데, 현장조사를 허락하는 사업주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류 부센터장은 “드라마 ‘닥터탐정’에 나오는 미확진질환센터(UDC)는 정부부처 합동 역학조사기관으로 수사권을 가졌지만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라며 “근로자가 산재를 신청하면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는 근골격계 질환, 뇌ㆍ심혈관계 질환, 정신질환 등 업무관련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역학조사를 하는데 사업주가 거부하면 조사를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은 이제는 질환으로 인한 근로자들의 소득 손실을 국가차원에서 보상해 주는 상병수당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한다. 김인아 한양대 의대 교수(직업환경 및 환경보건 전공)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대통령령으로 ‘상병수당을 부가급여로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관련된 시행령이 없어 근로자들은 산재보상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며 “산재가 인정되지 않으면 퇴직을 하거나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선하려면, 상병수당 지급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이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한국일보>의 김치중 의학전문기자가 격주 월요일 의료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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