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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대통령 경제 행보 못 미더운 이유

입력
2019.10.18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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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ㆍ현대차 잇단 방문에 냉소적 여론

내실 없는 ‘쇼잉’에 기대보다 불신 커

경제활성화 실질조치ㆍ정책전환 나서야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중정치에서 선전(Propaganda)과 홍보의 중요성은 막대하다. 지금은 임금이 백성을 ‘어엿비 너겨’ 선정을 베푸는 시대가 아니다. 통치를 해도 대중의 호응을 얻어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시정을 쉽게 이해시키고 실적을 널리 알리는 일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정치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선전과 홍보에 애를 쓰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실질이 뒷받침 되지못하는 공허한 선전이나 홍보는 정치적 기만일 뿐 아니라, 종국에는 불신만 사기 십상이다. ‘조국 사태’ 이후 부쩍 두드러진 문재인 대통령의 이른바 ‘경제 행보’에 대한 시중의 냉소적 반응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조국 사태 때문에 시급한 나랏일들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덧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경제 분야만 해도 그렇다. 50인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확대 시행이 불과 2개월밖에 남지 않은 주 52시간 근무제 때문에 업계에선 비상이 걸렸지만 이번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법안 등 대책이 논의되기는 사실상 글러 버렸다. 뿐만 아니다. 4차 산업혁명 기반 마련을 위한 ‘데이터경제 3법’ 개정은 물론이고, 산업계의 숙원이었던 서비스산업발전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 논의도 일체 공전돼 버렸다.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경고성 전망과 위기론이 잇따랐다. 국정 마비에 대한 자책감 같은 것도 작동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조국 사퇴를 전후해 두드러진 ‘경제 행보’에 나섰다. 10일엔 ‘QD 디스플레이’ 개발ㆍ생산에 13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수립한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을 찾았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우리나라 제조업 혁신의 근간”이라며 “삼성이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 주셔서 늘 감사드린다”고 치사한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손을 잡았다.

15일엔 경기도 화성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 산업국가 비전 선포식’에 참석했다. “자율주행차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상용화하겠다. 2030년까지 전기차와 수소차 판매 비중을 세계 1위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마치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해내듯, 17일엔 올 들어 처음으로 경제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총리도, 경제부총리도 없는 가운데 직접 회의를 주재한 모양새 때문에 ‘긴급 회의’로 보였다. 문 대통령은 엄중한 경제상황을 인정했다. 경기부양을 위한 ‘생활형 사회간접자본(SOC)’ 등 건설 투자 확대를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잇단 경제 행보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다. 한 신문은 사설에서 ‘숟가락 얹기 쇼’라며 대놓고 날을 세웠다. 경제장관회의에 대해선 ‘긴급함 없는 긴급회의’라는 빈정거림도 나왔다. 청와대는 ‘보수 언론의 공세’라고 일축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산업 지원은커녕 소득주도 성장, 근로시간 단축, 친(親)노동정책 등을 고수하며 산업현장에 빙하기를 불렀던 대통령의 새삼스러운 기업방문 릴레이에 즉각적 박수를 기대했다면 그게 오히려 비정상일 것이다.

문 대통령의 경제 행보는 지금까지 보여준 몇몇 인상적이지만 공허했던 이벤트들을 연상케 한다. 집권 초기 청와대 참모들과의 테이크아웃 커피 산책부터 일자리상황판 설치, 청년들과의 호프미팅, 그리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도보다리 산책 등 이벤트는 끝이 없었다. 하지만 화려했던 퍼포먼스들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서 반추해 보면 공허한 선전에 불과했던 것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정작 문 대통령의 경제 행보가 미덥지 못한 이유는 내실이 없는 것보다 진정성과 일관성의 결여 때문인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현대차를 방문해 감사를 표명한 다음날인 16일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사에서 우리나라의 경제사를 “가혹한 노동 통제와 저임금에 기반한 불평등 성장정책, 재벌 중심의 특권적 경제구조”라고 단언했다. 문 대통령이 드러낸 이런 식의 편향된 인식을 보며 시장과 기업은 대체 대통령의 진의가 어디 있는지 끝없는 불확실성의 늪을 헤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젠 미심쩍은 선전보다 정책 전환의 진심과 실력을 보여줄 때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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