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타령이 가요계, 아니 정계를 강타해 10주 넘게 정상의 자리를 내려놓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사실 무슨 일이 터져도 관심을 받기 힘들지 싶은데, 그나마 일성의 샤우팅 창법으로 한순간 시선을 집중시킨 록 스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법사위원장 여상규다.
“웃기고 앉았네, XX 같은 게.” 여기에서 XX는 장애인을 비하하는 종류의 욕설인데, 아무리 인용이라도 차마 활자로 쓸 수 없어 숨긴다. 일개 필부가 활자로 옮기기조차 저어되는 이 욕설은, 여상규 위원장이 무려 국정감사에서 법사위원장으로서 국회의원에게 뱉은 것이다.
어쩌다 이런 욕설이 나왔을까. 맥락은 더 어이가 없다. 여 위원장은 국정감사 도중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과 관련, 갑자기 수사 책임자인 서울 남부지검장을 불러 “그런 것은 정치 문제”라며 “검찰에서 함부로 손댈 일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문제는 여 위원장 본인이 패스트트랙 충돌 당시 채이배 의원을 특수감금한 혐의 등으로 고발당한 당사자라는 것이다. 이에 여당 의원들이 항의하자, 격앙해 소리치다 끝내 터져 나온 게 저 욕설이다.
본인이 고발당한 사건에 대해 검찰에 수사하지 말 것을 종용한 그의 발언은 큰 문젯거리다. 법사위는 검찰을 피감기관으로 국정감사를 진행하는 상임위이며, 여상규는 그 위원장이다. 검찰 개혁 등과 관련해 법안이 올라온다면 이를 심의하는 것도 법사위다.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그는 이미 패스트트랙 충돌 수사와 관련, 경찰의 수사 태도를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 절대적으로 참고하겠다며 경찰을 압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여 위원장의 샤우팅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그는 작년 이은애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 당시에도 의사진행 발언 신청을 가로막으며, 단전에서 끌어 모은 두성 창법으로 이렇게 내지른 바 있다. “이런, 쯧! 지금 이 회의 진행권은 위원장이 가지고 있어!” 이때도 워낙 강렬한 두성에 묻히긴 했지만, 핵심은 사실 의원의 발언 자체를 막는 월권에 있었다.
월권의 록 스타 여상규는 법사위라는 무대를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발휘한다. 법사위는 각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률안의 체계ㆍ자구 심사를 맡는다. 원칙대로라면 법률안이 형식적으로 법에 어긋남이 없는지 심사하는 것이 맞겠지만, 실제로는 법의 실질에까지 간섭하거나 아예 심사 자체를 안 해서 법률안을 폐기시키기까지 한다. 이러한 권능이 사실상 법사위를 상원처럼 기능하게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월권의 록 스타에겐 최적의 무대인 셈이다. 여 위원장은 그 폭발적인 월권의 시너지를 살려, 소속 정당인 한국당과 합의 없이 처리한 법안은 해당 상임위로 다시 회부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다 법사위의 월권을 그 이름에 걸맞게 아예 법제화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법사위는 입법의 가장 중요한 관문 중 하나다. 그래서 법사위원장 자리는 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제1 야당에 주어지는 것이 관례라고 하는데, 이게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과거 보수 정권 시절엔 꾸준히 여당 몫이었고, 정권 교체가 되자 갑자기 야당 몫이 되었다가, 또 박근혜 정부 후기에는 도로 여당이 가져갔다. 아무리 관례엔 예외가 있는 법이라지만 이 정도면 사실 제멋대로에 가깝다.
여상규는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한 사람이 이 모든 사달의 근간이라 볼 순 없지만, 그렇다고 그가 그저 당의 의지대로 이뤄지는 꼭두각시라 여기는 것도 도리어 그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다. “웃기고 앉았네, 이 양반 정말.” 이건 80년대 간첩조작사건의 1심 판사로서 무고한 피해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일에 대해 묻자 그가 보여준 반응이다. 그는 그 시대의 판사였던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법사위원장 여상규는, 부적절한 자리의 부적절한 인물이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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