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오로라 극장 총기 사건’ 이후 모방범죄 우려에 경계심 커져
영화 ‘택시 드라이버’ ‘시계태엽 오렌지’도 모방범죄 불러
17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화 '조커'는 지난 16일 1,149개 스크린에서 7만 8,412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누적관객수 409만 6,303명을 기록했다.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조커 박수남’ 뜬소문인 줄 알았는데, 내 근처에 앉은 관객이 박수 치더라.” (m*****)

영화 ‘조커’를 보는 한국 관객들 사이에 한때 ‘박수 금지령’이 나돌았습니다. 영화 상영 도중 박수를 치는 등 돌발 행동을 하면 관객에게 모방범죄에 대한 공포감을 줄 수 있으니 자제하자는 취지였는데요, 최근 미국 영화관에서 조커 상영 도중 한 관객이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나온 우스갯소리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영화 조커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보다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조커 개봉 직후 미국 경찰에 비상이 걸렸는데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경찰국은 LA 시내 주요 극장가 주변에 순찰과 경계근무를 강화했습니다. 랜드마크시어터 등 몇몇 극장에서는 조커 상영 기간 중 관객의 가면 착용을 금지했죠.

조커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개봉 후 2주 연속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흥행에도 성공했죠. 그런데 이렇게 잘 만들고, 흥행도 잘 되는 영화 한 편에 미국은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까요?

아마도 2012년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 개봉 당시 발생한 ‘오로라 극장 총기 사건’ 때문 아니냐는 추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조커가 모습을 감춘 8년 후 배트맨과 악당 베인의 대결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상영되던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의 한 영화관에서 제임스 홈즈(당시 24세)가 영화관에 총을 난사, 12명이 숨지고 70여명이 다친 일이 발생했습니다. 머리카락을 붉게 염색한 범인은 스스로를 조커라고 칭했으며, 범죄 방법도 만화 속 조커의 방식과 흡사했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유사 사건 발생에 대한 미국 사회의 경계심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이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은 조커 개봉 전 제작사 워너브라더스에 “(예고편에) 폭력 장면이 불필요하게 많이 들어갔다”고 우려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워너브라더스는 “영화도, 제작자도, 영화사도 조커를 영웅으로 떠받들지 않는다”며 픽션으로 봐줄 것을 당부했지만 결국 비극적 사건은 발생했던 거죠.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횡금사자상 수상작 ‘조커’는 전세계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모방범죄를 일으킨 사례는 또 있습니다. 1981년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 빠진 존 헝클리 주니어(당시 25세)는 극중 장면을 따라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저격했죠. 그는 배우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습니다.

1971년 작품인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도 작품성과는 별개로 모방범죄를 불러온 대표적 작품으로 꼽힙니다. 개봉 이후 영화를 흉내 낸 청소년들의 모방범죄가 기승을 부렸는데요. 영국 청소년들이 영화의 주제곡을 부르며 10대 소녀를 성폭행한 일도 있었죠. 결국 영화는 영국에서 27년간 상영이 금지됐습니다. 2000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는 한 청년이 영화 ‘매트릭스’(1999)의 주인공처럼 검은 가죽코트 복장을 하고 총으로 부모를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폭력성이 높은 영화는 모방범죄 가능성 때문에라도 무조건 상영을 막아야 하는 걸까요. 영화 조커의 경우에도 일부에선 모방범죄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이 있지만, “예술은 예술로 봐야 한다”는 반론도 많습니다. 이에 대해 영화평론가인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조커는 설득력이 뛰어나다. 관객이 조커의 내면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감정을 불러온다”며 “사이코패스도 ‘살인의 동기가 있다’는 면죄부를 줄 가능성이 있어 위험한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평했습니다. 그러나 책 '일베의 사상'(2013)을 쓴 박가분 작가는 1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회에서 조커가 탄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모방범죄를 우려할 것이 아니라 '조커'가 제시하는 서사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미국영화협회(MPAA)는 모방범죄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조커에 R등급(청소년 관람불가)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15세 관람가로 상영되고 있는데요. 이를 두고 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영상물등급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커와 ‘기생충’ 등 유명 영화들의 관람가 등급 판정이 지나치게 관대한 잣대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심 교수는 “판단력이 부족한 미성년자가 볼 경우 범죄자에 대한 연민이나 동일시하는 감정이 커질 수 있다”며 등급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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