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앞줄 오른쪽)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왼쪽) 원내대표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3년여간 흩어져 있던 보수 진영의 통합 논의에 마침내 불이 지펴졌다. “보수 재건을 위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만날 생각이 있다”는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의 제안에 황 대표가 “필요하면 대화하고 만날 것”이라고 화답하면서다. 하지만 통합에 대한 한국당 내 이견이 여전히 첨예한 데다, ‘게임의 룰’을 통째로 뒤흔들 공직선거법 개정도 얽혀있어 험로가 예상된다. 야권에서는 총선을 4개월쯤 앞둔 12월이 통합 논의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황 대표는 17일 국회에서 유 의원과의 만남 시점을 묻는 기자들에게 “그런 부분에 대해 말씀드릴 단계는 아니다”고 즉답을 피했다. 전날만 해도 황 대표는 유 의원에 대한 당내 반대 목소리에 대해 “대의를 생각하면 소아(小我)를 내려놓을 수 있다”며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듯했다. 이를 두고 유 의원이 이끄는 바른미래당 내 비당권파 모임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과 한국당의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이 나왔는데, 황 대표의 이날 발언은 사실상 ‘속도조절’에 나선 것으로 해석됐다.

황 대표가 ‘서두르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낸 건, 아직 당내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당의 주류로 꼽히는 친박(근혜)계 의원들은 탄핵에 찬성했던 유 의원에 대한 비토 정서가 여전하다. 특히 유 의원이 통합 논의의 전제로 내건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데 강하게 반대할 공산이 크다. 당 핵심 관계자는 “탄핵을 거치며 친박 의원들과 바른정당계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게 사실이라, 황 대표가 당내 의원들을 만나 설득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황 대표의 노력에도 정서적 거리감을 끝내 좁히지 못할 땐 통합 논의가 진전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바른미래당 비당권파를 이끌고 있는 유승민 대표가 16일 국회에서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변혁' 의원 비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변혁 내부의 통합 반대 기류도 심상치 않다. 변혁 소속인 안철수계 권은희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유 대표가 황교안 대표와 만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지 않는다”며 “유 대표가 한국당에 요구하고 있는 쇄신의 조건이라는 것이 한국당 특성상 달성 불가능한 조건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상 한국당과 통합에 회의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권 의원은 광주를 지역구로 둔 만큼 한국당과 통합이 가시화하면 변혁에서 이탈할 수 있다”며 “안철수 전 의원의 입장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총선 공천 문제도 얽혀있다. 유 의원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만 해도 비례대표인 김규환 의원이 한국당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고, 다른 변혁 측 인사들의 지역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통합이 실현될 땐 바른정당계든, 한국당이든 한 쪽은 출마 뜻을 접어야 한다는 얘기다. 향후 공천 문제를 놓고 교통정리 과정에서 배제되는 쪽은 집단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내달 27일 본회의에 부의되는 선거법 개정안의 향배 역시 주요 변수로 꼽힌다. 만약 여야 협상이 불발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라 있는 개정안이 본회의에 그대로 올라가 통과되면, 보수진영 전체로는 한국당과 변혁 신당이 따로 남는 게 유리할 수 있다. 현재 47석인 비례대표가 100석으로 확대되는 만큼, 지역구 의원은 한국당을 찍고 정당 투표는 변혁 신당에 몰아주는 게 의석을 최대한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총선 일정을 고려하면 늦어도 연내에는 통합에 대한 결론이 나야 한다는 게 한국당과 변혁 양측의 판단이다. 패스트트랙 논의가 마무리 될 공산이 큰 12월이면 야권재편 논의로 정계가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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