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자국 영토로 주장하고 있는 남중국해 구단선(九段線) 지도를 노출시킨 애니메이션 ‘어바머너블'(Abominable)이 베트남에서 상영 중단된 가운데 필리핀에서는 외교 장관이 이 영화 제작사에 대한 불매운동을 제안하는 등 동남아에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17일 일간 필리핀스타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테오도로 록신 필리핀 외교부 장관은 전날 자신의 트위터에 “(이 애니메이션 제작사인)드림웍스의 모든 영화를 보이콧하자”고 제안했다. 일국의 외교 수장이 외국 특정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제안한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 출신 소녀 ‘이(Yi)’가 과학자들에게 감금된 눈사람 ‘예티(Yeti)’를 그의 고향인 에베레스트산으로 다시 데려다 주는 여정을 담은 이 영화는 미국 드림웍스 애니메이션과 중국 펄 스튜디오 합작품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최근 세계 주요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중국 시장을 겨냥해 경쟁적으로 중국과 협업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록신 장관은 또 “문제가 되는 장면을 삭제해야 하다”며 “일부 주장처럼 위헌적으로 영화 상영을 금지하는 것보다 그게 더 낫다”고 말했다. 영화는 해당 애니메이션은 베트남과 비슷한 시기인 이달 초 필리핀에서 개봉했으며, 일부 중소형 극장에만 아직 상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친중국 행보를 보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도 이번에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실 대변인은 영화 규제당국이 ‘어바머너블’의 상영 금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록신 장관이 언급한 중단에 따른 위헌성 여부를 떠나 사실상 상영 중단을 지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베트남은 지난 13일 어바머너벌 상영을 개봉 열흘 만에 금지했다. 베트남은 중국과의 영유권 분쟁에 가장 강력한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는 나라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구단선을 긋고 인공섬을 건설한 뒤 군사 기지화해 필리핀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대만, 브루나이 등 인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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