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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학교법정

입력
2019.10.1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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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언제부턴가 선생님들로부터 상담 요청을 종종 받는다. 하루에도 몇 건씩 SNS, 문자메시지, 이메일, 전화로 사연을 접한다. 상담 내용은 단순한 질문부터 법률자문을 구하는 내용까지 다양하다. ‘오죽하면 나에게까지 이런 도움을 요청할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내가 아는 지식과 경험 또는 인맥을 총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한다. 이 상담에 적지 않은 시간을 쏟지만 보람도 느낀다. 동시에 안타까움을 느낄 때도 많다. 교권침해를 당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다급하게 묻는 질문이 갈수록 늘어가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도 있었다. 사연을 들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상담을 요청한 선생님에게 학교에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는 요구를 먼저 하라고 당부하면서 관련 법규를 찾아 메시지로 보냈다. 며칠 후 그 선생님은 교권보호위원회를 무사히 마치고 해당 학부모로부터 사과를 받았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이 사연을 계기로 그 학교 교권보호위원들과 면담을 해 보고 싶었다. 개정된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어제부터 학교교권보호위원회를 모든 학교에 의무적으로 구성해야 한다. 문제는 없는지 알아보고 싶었고, 면담 내용을 토대로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싶다는 취지를 설명했더니 당사자들은 흔쾌히 통화에 응해 주었다.

교권침해를 당한 선생님은 교장, 교감, 교권보호위원을 맡고 있는 동료교사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안 그래도 다들 바쁜데 자신이 요구한 일로 퇴근도 제때 못하는 것을 봤다면서. 한편 학부모들 사이에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게 된 것이 부담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우처럼 교권침해에 관련한 대응 요령들을 잘 모르는 교사들이 많으니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교감 선생님은 법령에서 정한 요건에 따라 학교교권보호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는데 선뜻 나서주는 학부모가 없어서 위원회 구성부터 어렵다고 했다. 앞으로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요구가 늘어날 텐데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부담도 크다고 했다. 이번 경우처럼 실제로 사안이 발생하면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서 교권침해 여부를 가려야 하는데 학교구성원끼리 이를 가리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회의가 든다며 학교 밖에서 위원회를 구성하면 좋겠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학부모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분은 학교폭력자치위원회보다 교권보호위원회가 더 힘들다고 했다. 교권침해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이웃인데 학생도 아니고 어른을 상대로 교권침해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며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개정된 교원지위법은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보호조치와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대한 제재조치가 핵심이다. 보호조치로는 교권침해를 입은 교원이 법률상담, 특별휴가, 심리상담 및 조언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제재조치로는 교육활동을 침해한 학생에 대해 학교교권보호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학교에서의 봉사, 사회봉사, 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출석정지, 학급교체, 전학, 퇴학처분(의무교육 기간은 해당되지 않음)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치가 어느 정도 교권침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폭력에서 경험했듯이 이어지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는 교사들의 요구는 늘어날 텐데 학교는 이 요구를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가 가장 많은데 이에 대한 제재조치는 없으니 실효성이 있을까? 학교폭력자치위원회는 교육지원청으로 옮기면서 더 껄끄러운 교권보호위원회는 왜 학교에 두어야 할까? 성격이 유사한 두 법을 폐지ㆍ통합할 수 없을까? 진짜 중요한 질문이 남았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곳이 학교인가, 법정인가?

정성식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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