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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 3억2,000만원의 대출 빚을 지게 된 30대 교사의 사연이 보도(본보 17일자 19면)되자 독자 중 상당수는 사기단이 아닌 피해자를 책망했습니다. 17일 오전 다음,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게재된 본보 기사의 댓글을 보더라도 피해자 A(34)씨를 향해 “바보인 거 자랑하느냐” “교사 맞느냐” 등의 힐책이 쏟아졌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진 게 언제인지 아직도 속고 있느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이러한 일방적 매도는 부당할 뿐더러 현실을 모르는 처사라고 생각됩니다.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은 과거처럼 어눌한 말투의 사기꾼이 어설픈 논리를 들이대는 수준에서 한참 진화해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개인정보를 빼내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당한 사람이 잘못”이라는 단순논리에 머물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자가 A씨를 직접 만나 들어보니 사기꾼들은 A씨의 이름은 물론 직장정보까지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개인정보가 다른 경로로 이미 유출돼 사기꾼의 손아귀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검찰과 금융당국을 사칭하는 사기꾼들이 자신의 신상정보를 줄줄 읊자 A씨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일당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고 합니다.

악성 앱을 설치한 수법도 교묘했습니다. A씨도 보이스피싱 관련 뉴스를 보면서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받은 출처불명의 인터넷주소(URL)는 누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사기꾼들이 구글 앱스토어에서 정식으로 배포되는 원격조정 앱을 다운받게 만들고 이를 통해 본인 휴대전화에 악성 앱을 설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했던 겁니다. 사기꾼들이 경찰이 만든 보안용 앱이라며 자신의 휴대폰에 원격 설치하는 걸 눈으로 보면서도, 앱의 로고나 화면이 실제 경찰 공식 앱과 똑같다 보니 속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피해자 A씨가 당시 일당으로부터 속아 설치한 경찰 사칭 악성 앱

일단 악성 앱이 설치되면 피해자가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 휴대전화에 표시되는 번호가 조작될 수 있습니다. 사기꾼에게 받은 전화가 의심스러워 수사기관의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면 고스란히 사기꾼에게 연결되기 때문에 피해자는 기만 당하기 십상입니다.

A씨는 사기를 당하는 과정에서 가족 등 주변 사람들과 해당 통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사기꾼들이 “만약 가족에게 수사 내용을 공유하면 다른 가족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협박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A씨가 마침내 사기 당했다는 사실을 인지한 시점은, 그의 태도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눈치 챈 배우자의 종용으로 직접 경찰서를 찾아가 조사를 받으면서였습니다.

보도 직후 기자에겐 “비슷한 수법으로 당했다”는 피해 사례 제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사기로 3,000만원을 잃었다는 피해자 B씨는 “분명 카드사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절차에 따라 대출금을 갚았는데 알고 봤더니 사기꾼과 통화한 거였다”며 “내 전화에 나도 모르게 악성 앱이 깔렸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보이스피싱 범죄 근절을 위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A씨의 경우만 해도 그의 돈을 받아 가로챈 일당 중 ‘전달책’ 3명만 검거됐을 뿐 총책의 행방은 오리무중입니다. 보이스피싱 범죄조직 대다수가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는 탓에 국내 수사기관이 검거하기 쉽지 않은 탓입니다.

때문에 지금으로선 최선의 보이스피싱 사기 대처법은 예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들어 모바일 앱이 보이스피싱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이 잦아지면서 기성세대에 비해 스마트폰 조작에 능숙한 20~30대가 오히려 범죄에 취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앱 설치에 서툰 장년층의 경우 사기꾼들이 ‘첨단 수법’을 쓰는데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A씨 사례에서 보듯 제3자 지시에 따라 자기 휴대전화에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문자메시지에 실려온 URL 링크를 누르는 일은 어떤 경우든 삼가야 합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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