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중국 최대 '피겨 랜덤박스' 제조업체 팝마트가 쇼핑몰에 설치한 자판기. 개성과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중국 Z세대의 소비 열풍에 힘입어 이 업체는 지난해 상반기 2,109억위안(약 36조원)의 영업 순이익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14배 성장한 수치다. 중신망 캡처

중국 젊은이들이 ‘피겨 랜덤박스(盲盒)’에 열광하고 있다. 상자를 열 때까지 어떤 제품이 담겼는지 알 수 없어 운에 따라 무작위로 구매하는 ‘뽑기’의 일종이다. 물건의 실용성보다 재미와 개성, 유행 등 심리적 만족감을 중시하는 차세대 소비 주력 ‘Z세대’의 욕구와 맞아떨어져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각광을 받는 반면, 상술을 놀이로 포장해 도박 심리를 부추겨 돈을 탕진하는 ‘판도라의 상자’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피겨는 시리즈당 12개 종류로 나뉘는데, 각 시리즈는 고정 모델ㆍ숨겨진 모델ㆍ스페셜 모델 등 12개로 구성된다. 따라서 자판기 버튼을 눌러 희소성이 높은 숨겨진 모델이 나올 확률은 144분의 1에 불과하다. 최고 인기품목인 ‘몰리(Molly)’ 피겨의 경우, 골드 스페셜 모델을 손에 쥘 확률은 720분의 1로 더 낮아 복권이나 마찬가지다. 피겨 가격은 개당 39~69위안(약 6,530~1만1,560원)으로 부담이 없지만, 특정 모델을 갖기 위해 연간 2만위안(약 335만원) 이상 지출하는 열성 소비자가 20만명이 넘을 정도로 팬심이 두텁다.

취미로 수집하는 수준을 넘어 돈벌이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59위안짜리 피겨 사티로리(Satyr Rory)는 중고 쇼핑몰에서 50배인 2,999위안에 거래된다. 기타 유명 모델도 구입가의 20~30배에 되팔리고 있다. 한 달에 40만위안(약 6,700만원)을 지출했다는 어느 네티즌은 “한번 함정에 빠지면 유혹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시장 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지난해 11월 11일 광군제 하루 동안 59위안(약 9,890원)짜리 피겨가 48만개나 팔려 2,832만위안(약 47억4,5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400만개 이상 판매된 몰리 피겨의 매출액만 2억위안(약 335억원)에 달한다. 제작사인 팝마트는 전국 52개 도시에 100곳의 오프라인 상점과 428개의 무인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청년보 조사 결과, 소비자의 48%는 ‘뽑을 때 쾌감을 느껴 구입을 멈출 수 없다’고 답했다. 심리학자들도 이처럼 무엇을 구매하는지 모르는 불확실한 자극이 소비자의 반복 행동을 유도한다는 데 동의한다. 이른바 블라인드 마케팅이다. 이어 ‘돈을 벌기 쉬워서’(21.7%), ‘힐링과 사교를 위해’(16.4%), ‘패션과 트렌드’(13.8%)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주요 소비층은 1억4,900만명에 달하는 Z세대다. 1995~1999년 태어나 이제 갓 사회에 진출하거나 대학ㆍ대학원에 다니는 ‘주우허우(95後)’가 피겨 구입을 선도하고, 여기에 2000년 이후 태어난 중ㆍ고등학생인 ‘링링허우(00後)’가 가세해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자아실현과 자기만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또래와의 소통을 위해 거침없이 지갑을 열고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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