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북서부 파키스탄 접경 지역인 라자스탄에서는 어린이 100명 중 2명만이 예방접종 받던 시절이 있었다. 인도 정부는 물론이고 여러 개발기구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예방접종의 중요성을 홍보했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는 아이가 한 살이 되기 전에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면 악마의 눈길을 받아 죽는다고 믿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무료 예방접종을 해주겠다는데도 부모들이 아이들을 보건소로 데리고 오지 않는 것은 과연 이런 미신 때문일까.
□이를 검증하기 위해 나선 경제학자들이 있었다. 마이클 크레이머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 출신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자 아브히지트 바네르지와 그의 동반자로 함께 수상의 영예를 안은 역시 MIT 교수인 에스테르 뒤플로다. 이 부부는 의학 실험에서 흔히 이용되는 대조실험을 이용했다. 3개의 그룹으로 나눠 아무 변화도 주지 않거나, 간호사를 통해 예방접종을 독려하거나,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 콩 2파운드를 나누어 주는 실험을 통해 결과를 확인했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경제적인 유인을 활용한 콩 2파운드였다.
□뒤플로 부부가 2012년에 냈고 국내에도 바로 번역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원제 ‘Poor Economics’)라는 책에 담긴 내용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가난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클 수밖에 없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출할 여력도 극도로 제한돼 있으므로 이런 장애를 낮춰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이들을 대상으로 필수적인 보험을 보조했을 경우 생산력이 높아졌다거나 이들의 저축을 유도하기 위해 예금은 쉽지만 출금은 어렵게 하고 금융기관의 비용을 보조했을 때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빈곤 문제는 비단 인도나 아프리카 같은 저개발국, 개발도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선진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에게 눈에 닥친 문제에만 급급하지 않고 어느 정도 미래를 내다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저축에 관심이 적은 이유는 목표물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목표를 향해 가는 도중에 수많은 유혹에 넘어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라는 뒤플로 부부의 지적을 곱씹게 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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