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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초인은 어디쯤 오고 있을까

입력
2019.10.16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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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의 ‘뜨ㆍ아ㆍ아’ 정책 비판하고

서초동 보다 광화문에 기울어졌지만

기득권 586도 여야 초월한 새인물 갈망

이육사(오른쪽) 시인과 안동독립기념관에 게시된 광야.
이육사(오른쪽) 시인과 안동독립기념관에 게시된 광야.

요즘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모두 거머쥔 세력으로 욕먹는 세대가 ‘586’세대다. 별로 챙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나 역시 억울하지만 그 세대의 끝자락에 포함되어 있다. 지난 주말 586 또래 친구와 지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서울 강남에 사는 ‘강남 586’, 현 정권 인사들과 잘 알지만 지지자는 아니라는 ‘부산 586’, 조국은 밉지만 검찰개혁은 필요하다는 ‘수원 586’, 호기심에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에 모두 가봤다는 ‘양다리 586’ 등이었다.

그런데 이들과의 대화 분위기가 예전과 달랐다. 몇 달 전만 해도 정치적 스펙트럼으로 나뉘어 싸웠는데 이번에는 모처럼 두 가지에 쉽게 의견 일치가 이뤄졌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을 내세운 건 실수였다’는 것이었고, 또 다른 건 ‘여도 야도 싫다. 이 사태를 해결해 줄 새 인물이 나와야 한다’는 바람이었다. 별도 장소에서 다른 시간에 이뤄진 모임들이었지만, 586끼리의 대화를 재구성해 소개해 본다.

평소에도 이 정부에 부정적이던 ‘강남 586’은 “문재인 정부의 ‘뜨ㆍ아ㆍ아’ 정책이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이 ‘뜨ㆍ아ㆍ아’가 뭐냐고 묻자, “양립할 수 없다는 뜻인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라고 말했다. 경제 행보를 한다지만 언제 돌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뜨ㆍ아ㆍ아’라고 주장했다. 삼성과 현대차를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라고 칭찬하다가 돌연 검찰이 압수수색을 벌이거나, 4차산업 혁명과 혁신을 강조하면서도 ‘타다’보다는 택시업계를 보호하는 이중 정책을 펴는 걸 나름의 증거로 제시했다. “기업가와 부자들은 ‘뜨ㆍ아ㆍ아’ 정책으로 불안해하고 있으며, 이런 기조가 내년에도 계속되면 이민 행렬이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양다리 586’은 ‘조국 수호’와 ‘조국 반대’ 여론에 대해 판정을 내렸다. “직접 가봤더니 서초동이 더 조직적이었지만, 광화문 집회가 규모도 컸고 열기도 훨씬 뜨거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기계적 균형을 취하려는 듯 여당과 야당을 모두 공격했다. “지난 2년 겪어보니 이 정부가 깨끗하지도 않고 무능하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렇다고 아직은 야당을 믿을 수도 없다”고 마무리했다.

‘부산 586’은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이육사의 ‘광야’를 일부 소개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가 눈 내리는 일제강점기를 이겨내고 매화 향기 가득한 시대를 열어줄 초인을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여야를 뛰어넘어 새 길을 제시해 줄 정치적 초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같은 인물이 나타나면 된다”고 프랑스의 성공 사례까지 소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사회당 정부에서 경제산업부 장관을 지낸 경력이 전부지만, 2016년 ‘레퓌블리크 앙 마르슈!’(REMㆍ전진하는 공화국)를 창당하고 당 대표에 오른 뒤 2017년 대통령이 되었다.

‘부산 586’ 주장에는 모든 586이 동의했다. 그러면서 저마다 21세기 초인이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의견을 쏟아냈다. ‘수원 586’은 “중국 공산당마저 4차 산업에 미래를 거는데, 우리는 아직도 20세기 규제에 매달려 있다”며 “21세기 문법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양다리 586’이 대권 주자들이 부인이나 ‘미투’ 때문에 여론 지탄을 받거나 꿈을 접게 된 상황을 지적하며 “21세기 한국 정치판에서 살아남으려면 일단 사생활 관리가 먼저”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지인들의 대화를 들으며 국론을 모으고 새 방향을 알려줄 초인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초인이 단기필마로 나왔다고 한들 우리 국민이, 보다 정확히 말하면 유권자들이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 지 궁금했다.

조철환ㆍ뉴스3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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