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예선 평양 원정 0-0… 벤투 “주심이 경기 자주 끊어”
北 생중계 불허에 문자 중계… 이르면 17일 녹화방송 가능할 듯
파울루 벤투(50)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관중도 중계도 없이 펼쳐진 월드컵 예선 사상 첫 평양 원정에서 북한과 득점 없이 비겼다. 당초 약 4만 명의 관중이 들어차 북한의 압도적 응원이 예상됐던 김일성경기장엔 양팀 관계자 등 최소인원만 입장한 상태에서 ‘무관중 경기’로 진행됐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도 전격 방문한 경기장엔 태극기가 내걸리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며 국제경기 구색만 갖춘 모습이었다.
한국이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에서 졸전 끝에 북한과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한국은 손흥민(27ㆍ토트넘)과 황의조(23ㆍ보르도) 투톱을 내세우는 등 최정예 멤버를 가동한 뒤, 0-0으로 맞선 후반 황희찬(23ㆍ잘츠부르크), 권창훈(25ㆍ프라이부르크), 김신욱(31ㆍ상하이 선화)을 교체 투입하는 강수를 뒀지만 끝내 득점 없이 승부를 내지 못했다. 이날 한국은 수비수 김영권(29ㆍ감바오사카)과 김민재(23ㆍ베이징 궈안)가, 북한은 리은철(24)과 리영직(28)이 각각 경고를 받는 등 거친 경기가 전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무승부로 조1위를 지키게 된 벤투 감독은 “주심이 경기를 자주 끊으면서 중단된 시간이 많아 평상시와 경기가 다르게 전개됐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조1위란 목표를 향해 달릴 것”이라고 했다.
1990년 10월 11일 열린 남북통일 축구대회 이후 29년 만에 만난 남북 성인대표팀간의 경기지만, 우리 국민이 경기 진행상황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글과 사진뿐이었다. 영문으로 제공되는 FIFA와 아시아축구연맹(AFC) 홈페이지 문자중계도 신통찮아 평양 현지에서 AFC 감독관이 전하는 정보에 사실상 의존해야 했다. 전세계 주요 스포츠 이벤트 생중계를 휴대폰으로 어디서든 생생히 지켜볼 수 있는 시대에 문자중계라는 상상조차 힘들었던 상황이, 북한의 몽니 탓에 현실이 된 셈이다. 전해진 정보도 옐로카드와 선수교체 등에 한정돼 슈팅 여부나 슈팅 수 조차도 전달되지 못했다.
축구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김일성경기장의 인터넷 연결 상황이 열악해 현지에 파견된 축구협회 직원이 이메일로 기본적인 현장 정보를 전하는 데 애를 먹었다. 결국 축구협회는 현장에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는 키르기스스탄 출신 AFC 경기감독관의 도움을 받아 경기장 상황을 전할 수 있었다. 경기 과정이 국내에 전해지는 과정도 꽤나 복잡했다. AFC 경기 감독관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AFC 본부에 현지 상황을 알리고, AFC 본부에서 현장 상황을 취합해 이를 축구협회에 최대한 빠르게 공유했다. 이 정보를 전달받은 축구협회 관계자가 최종적으로 한국 취재진과 협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진행 상황을 전했다.
국내에선 이런 과정을 통해 경기 시작 1시간 전 선발 명단을 전달받았고, 30분 전엔 무관중 개최 가능성을 전달 받았다. 문자와 함께 사진도 전달돼 국내 축구팬들이 조금이나마 현장 모습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제껏 경기 주요장면들을 문자로 풀어 중계하던 AFC와 FIFA 홈페이지는 이날 선수교체 등 최소한의 상황만 전달했지만, AFC-축구협회간 ‘핫 라인’으로 국민들은 가능한 빨리 경기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평양 원정길은 시작부터 깜깜이었다. 베이징을 거쳐 14일 오후 4시 10분쯤 평양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진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조차 이날 자정까지도 연락두절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평양에 가 있던 AFC 관계자를 통해 사진 몇 장을 먼저 받아 날이 지나기 전 한국 선수단의 평양 도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생중계로 접하지 못한 경기 영상은 이르면 17일 국내 팬들이 시청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측이 한국 대표단이 평양을 출발하기 전까지 경기 영상 DVD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다”며 “한국 선수단이 베이징을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시간이 17일 오전 1시쯤인데, (국내 방송사가)이 영상에 대한 기술적 확인을 하면 제법 시간이 지난 뒤 우리 국민들이 시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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