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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는 가위 … 여성간호사 홀로 정신질환자 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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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는 가위 … 여성간호사 홀로 정신질환자 대면

입력
2019.10.17 04:40
수정
2019.10.29 14:0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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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참사 6개월, 정신질환 응급현장은]

피해망상 60대 남성과 50분 얘기

다시 오겠다 인사하고 나왔지만 “40여명 관리, 언제 또 올진 몰라”

방화·흉기 18명 사상 진주 참사 후 환자 신고 폭증에 인력난 가중

정신센터 직원 퇴직·이직도 늘어 상담·돌봄 등 형식적 수준에 그쳐

10월 11일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 소속 정신간호사가 병원에서 퇴원한 지 1달이 채 되지 않은 여성 조현병 환자(60대)의 공공임대아파트로 방문해 환자가 약을 잘 챙겨 먹는지 상담하고 있다. 정신간호사는 친구처럼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복약지도뿐만 아니라 반찬은 잘 챙겨먹는지, 다른 가족과 트러블은 없는지 기타 신체적 건강상태는 어떤지 등을 점검한다. 여성 조현병 환자는 사람이 그리워서 정신간호사가 아파트 1층에 도착하자 자기집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김민호기자
10월 11일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 소속 정신간호사가 병원에서 퇴원한 지 1달이 채 되지 않은 여성 조현병 환자(60대)의 공공임대아파트로 방문해 환자가 약을 잘 챙겨 먹는지 상담하고 있다. 정신간호사는 친구처럼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복약지도뿐만 아니라 반찬은 잘 챙겨먹는지, 다른 가족과 트러블은 없는지 기타 신체적 건강상태는 어떤지 등을 점검한다. 여성 조현병 환자는 사람이 그리워서 정신간호사가 아파트 1층에 도착하자 자기집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김민호기자

“기자님, 화장실 앞에 가위 있어요.”

지난 11일 오후 경기 화성시의 한 주택. 조현병 환자 60대 남성 A씨의 상태를 살피려고 집을 방문한 정신건강전문요원 조영희(가명)씨가 동행한 기자에게 귀띔했다. 기자가 돌아보니 바닥에 25cm 남짓한 가위가 놓여 있었다. 경력 13년차 정신간호사인 조씨가 위험요소를 파악하고 기자에게 경고한 것이다. 이는 A씨의 ‘자기방어’ 도구다. A씨는 조씨가 근무하는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의 사례관리대상으로 등록된 환자 450명 중 한 명이다. A씨는 조씨를 기다리며 과일을 깎아놓을 정도로 사람을 그리워해 위험도는 낮지만 피해망상이 있고 약물복용을 마음대로 중단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윗집과 다퉈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50분 간 면담 뒤 조씨는 A씨에게 “다시 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지만, 재방문 시기는 확실치 않다. 조씨가 맡은 사례관리대상자가 40여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조씨를 비롯 사례를 관리하는 정신건강요원이 대부분 1년 단위 계약직이라 담당자가 바뀔 수도 있다. 사고가 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A씨는 자기방어적인 환자이며 위험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씨 혼자 방문한 것이다. 실제로 의료계나 사회복지학계 등에선 폭력성 자체는 정신질환의 증상이 아니며 타인에 대해 공격적인 환자는 드물다고 지적한다. 다만 그 드문 사례가 사고로 악화하는 일을 예방하려면 정신요원의 현장지원이 필수적인데 면담 간격이 길어질수록 중증 정신질환자들이 충분한 보건ㆍ복지 지원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지난 4월 17일 새벽 경남 진주시의 한 아파트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조현병 환자 안인득이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이웃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이 희생되고 18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정부는 지난 5월 정신센터 인력 증원, 정신건강응급대응팀 확대 등 ‘우선조치방안’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참사 6개월이 지났지만 언제라도 ‘진주 참사’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게 현장의 우려다.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 송용민 위기대응팀장이 한 달째 고시원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10월 11일 화성시의 한 고시원으로 출동했다. 면담 결과, 면담 대상자는 우울감이 심해 실제로 최근 자살 시도를 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고시원 외부에 방치된 면담자의 차량 모습. 기자가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김민호기자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 송용민 위기대응팀장이 한 달째 고시원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10월 11일 화성시의 한 고시원으로 출동했다. 면담 결과, 면담 대상자는 우울감이 심해 실제로 최근 자살 시도를 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고시원 외부에 방치된 면담자의 차량 모습. 기자가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김민호기자

◆진주참사 이후 업무 급증…정신센터는 인력난 가중

전국적으로 243개소인 정신센터는 일종의 정신건강 전문보건소다. 보통 지역병원 등이 지자체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데 직원은 대부분 10명 안팎이다. 이들은 등록된 정신장애인에 대한 상담 등 사례관리는 물론이고,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자살예방 게이트키퍼(신고자) 양성이나 지역사회 정신건강 교육홍보활동 등을 맡고 있다.

지난 5월 정부의 우선조치방안의 핵심은 조씨와 같은 정신요원의 증원이었다. 내년부터 2022년까지 충원 예정된 785명의 인력 채용시기를 앞당겨 현재 정신요원 1인당 60명 수준인 사례관리대상자를 25명 수준까지 낮춘다는게 정부 계획이다. 올해는 9월 현재 258명이 채용돼 목표(290명) 90%가까이 충원했지만, 현장에서는 그 정도로는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퇴직자와 이직자를 고려하지 않은 수치이기 때문이다. 정신센터 직원의 근속연수는 3년 정도다.

여기에 진주참사 이후 정신질환자 신고는 폭증하고 있다. 화성시의 경우, 1~3월 17건이었던 주요 정신질환 관련 출동건수는, 4~9월 56건으로 늘어났다. 월 평균 5.7건에서 11.2건으로 배증(倍增)한 셈이다. 조씨는 “병원에서 환자 1명이 퇴원해 지역사회로 돌아오면 사회적응을 도와주느라 기존 환자들에게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나마 화성시 정신센터는 문재인 정부의 역점사업인 ‘지역사회 돌봄사업(커뮤니티 케어)’수행기관이라 다른 지역보다 예산도 넉넉하고 인력도 여유있는 편이다. 위기대응팀과 사례관리팀 등을 합쳐 직원이 50명으로, 평일 저녁에는 10시까지 출동이 가능하다. 전준희 화성시정신센터장은 “팀이 나눠져 있는 정신센터는 전국적으로 드물다”고 말했다.

16일 경기 화성시의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화성시는 인력이 다른 지역의 5배 수준에 이르는 대형센터로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20, 30대 여성 직원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전원이 계약직인 점은 동일하다.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 제공
16일 경기 화성시의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화성시는 인력이 다른 지역의 5배 수준에 이르는 대형센터로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20, 30대 여성 직원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전원이 계약직인 점은 동일하다. 화성시정신건강복지센터 제공

일례로 서울의 광역단위 정신센터인 서울시자살예방센터는 자살예방에 한해 콜센터가 야간에 운영되지만 담당 인력이 2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현장에 출동하면 콜센터는 3, 4시간씩 멈출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 관계자는 “우리 구에서 중증질환으로 등록되어 있는 사람 중 아동, 알코올 중독 환자를 제외하고도 320명”이라며 “담당자 4명 뿐이라 새로운 환자가 이곳에 와도 더 이상 등록을 받아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상담은 형식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조현병 자녀를 둔 강원도의 박옥희(59)씨는 “정신건강센터 직원은 8월에 마지막으로 찾아왔다”면서 “정신센터에서 무슨 지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진주참사 이후, 정신센터 업무가 힘들고 위험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인난은 더욱 심각해졌다. 채용 대상인 정신간호사, 정신사회복지사 등은 일반 병원이나 사회복지재단, 치매안심센터 등으로 이직하는 상황이다. 화성시정신센터 역시 진주참사 이후 채용공고를 냈지만 아직도 목표했던 6명을 채용하지 못했다. 김성우 보건의료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 정책부장은 “정부가 내년부터 인력 채용을 위한 예산을 증액한다지만 지자체가 같은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매칭방식이라 지자체들이 흔쾌히 나설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진주참사 이후 전국 행정입원_신동준 기자/2019-10-16(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진주참사 이후 전국 행정입원_신동준 기자/2019-10-16(한국일보)

◆여전히 응급입원에 소극적인 경찰

정신질환자 응급입원에 소극적인 경찰 태도도 별로 바뀌지 않았다. 경찰은 자ㆍ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를 발견할 경우 직접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동의를 전제로 최대 3일간 응급입원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요원이 사고 현장에 출동해 정신질환자에게 자해위험이 있으니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해도, 경찰은 향후 환자가 흉기를 휘두르는 수준의 ‘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응급입원에 동의한다. 민원이나 소송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조씨의 동료인 작업치료사 이루니씨는 “지난달 맨손으로 락스를 만지며 몇 시간씩 화장실을 청소하는 조현병 환자를 발견했지만 명백히 신체에 손상이 가는 상황에서도 경찰은 응급입원에 동의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질환자가 ‘당신은 경찰도, 공무원도 아닌데 무슨 참견이냐’라며 반발하면 민간인 신분인 정신요원들로서는 설득하거나 대응하기가 어렵다. 11일 화성시의 한 고시원에서 한달 동안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자살 의심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현장에서 정신요원들은 어렵게 만난 자살시도 의심자에게 자신의 소속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보건소에서 왔습니다”고 둘러대야 했다. 송용민 화성시정신센터 위기대응팀장은 “경찰이나 공무원이 위기개입이나 정신건강 상태 판정을 요청한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신요원을 대면해야 한다고 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니 공권력도 아닌 정신요원에게 강제적 권한을 줄 수야 없겠지만, 환자가 정신요원을 만나야 한다는 의무라도 법에 명시하면 환자를 보다 수월하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저작권 한국일보]정신건강복지센터 등록환자_신동준 기자/2019-10-16(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정신건강복지센터 등록환자_신동준 기자/2019-10-16(한국일보)

정부는 지난 5월 우선조치방안을 내놓으면서, 출동상황에 대한 경찰과 소방, 정신요원을 위한 새로운 지침서(매뉴얼)를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5개월째 소식이 없다. 또 정신응급상황 대응을 위해서 지자체별로 경찰과 소방, 정신센터 등 실무자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운영하도록 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의 한 자치구 정신센터장은 “관련 기관들이 한 두 차례 만났을 뿐, 소방이나 경찰이 시간을 내주지 않으니 교육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해우 서울의료원 공공의료사업단장은 “정신응급상황이 발생해서 경찰과 정신전문요원이 출동했을 때, 소방 구급차를 타야하는지 경찰차를 타야하는지조차 절차가 정립돼 있지 않아서 현장에서는 혼란이 빚어진다”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주먹구구식으로 정책을 내놓지 말고, 정책이 지속가능한 기반, 조직 마련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화성=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경찰은 왜 응급입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어 할까요? 또 다른 비자의입원인 행정입원은 왜 어려울까요? 입원 자체가 어려운 현실과 그 이유가 궁금하시면 오늘 한국일보에 함께 보도된 기사 <입원 어려운 정신질환자들…국공립병원은 빈 자리 없고, 민간병원은 수가 낮아 꺼려>를 읽어보세요. 포털에서 제목으로 검색하시거나 아래 관련기사 목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의 <진주참사 6개월> 기획기사는 18일 정부의 개선 노력과 한계점을 다룬 <하>편이 보도됩니다. 기획기사 종료 이후에도 추가로 정신질환, 장애를 겪는 당사자들이 요구하는 지원과 치료 정책에 대한 보도가 예정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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