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디움 공연 해외 가수 최초… ‘아랍 아미’ 한글 플래카드 들고 환호
현지 문화 맞춰 춤 수정ㆍ기도 공간 마련… ‘사우디 개방’ 불쏘시개 된 K팝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킹파드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공연에서 히트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를 부르고 있다. 일곱 멤버들은 “아홉브쿰”(사랑해요), “슈크란”(감사합니다) 등 아랍어로 인사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얼굴과 손발을 제외하고 전신을 가린 검은색 옷, 아바야를 입은 여성 관객들은 3시간 공연 내내 빛나는 ‘아미밤(방탄소년단 응원봉)’을 흔들며 어둠이 내린 공연장을 밝혔다.

“오 오 오 오~”. 지난 1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킹파드 국제경기장.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아이돌’ 반주가 흐르자마자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떼창’으로 호응했다. “BTS!”를 연신 외쳤고, 방탄소년단의 한국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몸을 흔들었다. 얼굴을 히잡으로 가린 채 무대 앞에서 한글로 ‘김남준(RM의 본명)’이라 쓴 플래카드를 든 ‘아랍 아미’도 있었다. 한국시간으로 12일 새벽 1시 30분부터 시작된 방탄소년단의 사우디아라비아 공연을 네이버 실시간 중계로 지켜본 풍경이다.

이슬람 전통 의상인 아바야를 입은 여성 관객들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킹파드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 공연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국경도, 높디높은 종교의 벽도 방탄소년단 앞에선 아무런 장애물도 아니었다. 엄격한 이슬람의 율법 아래 아바야를 입은 채 숨 죽이고 살아야 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여성 관객들은 이날 공연장에서 방탄소년단을 향한 열정을 드러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공장소에서 춤추는 것도 금지된 나라에서 아랍 여성들이 금기를 깨 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방탄소년단 공연이 열린 킹파드 국제경기장은 2017년까지 여성의 입장을 제한(축구 경기 관람 불가)했던 ‘금녀’의 장소였다.

방탄소년단은 폐쇄적인 아랍 문화의 빗장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일곱 멤버들은 노출이 거의 없는 의상을 입었다. ‘페이크 러브’ 후렴 군무 때 정국이 복근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도 하지 않았다. 현지 문화에 맞춰 의상과 안무를 바꿨다.

방탄소년단 멤버인 RM이 솔로 무대 '러브'에서 무대 연출로 '사랑해요 리야드'란 뜻의 아랍어를 띄웠다. 네이버 방탄소년단 공연 생중계 캡처

방탄소년단은 ‘아랍 아미’와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RM은 솔로 무대 ‘러브’를 꾸미며 ‘사랑해요 리야드’란 뜻의 아랍어를 띄워 관객들의 환호를 샀다. 아랍권에서 열린 K팝 공연장엔 이색적으로 ‘기도의 공간’이 마련됐다.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이슬람 신도를 위해서다. 네 번째 기도 시간인 오후 5시 31분(현지시간)이 되자 방탄소년단은 리허설을 중단했고, 공연장을 찾은 이슬람 신도들은 공연장 내 마련된 카펫에서 예배를 했다. 트위터에서 ‘sorafir*****’란 계정을 쓰는 여성 관객은 공연 후 SNS에 글을 올려 “방탄소년단이 안무 일부를 수정하고, 공연 여성 스태프들이 의무가 아닌데도 아바야를 입어 이슬람 문화를 존중해주는 것 같아 마음이 참 따뜻했다”라고 했다.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 사우디아라비아 공연장에 이슬람 신도를 위해 마련된 기도 공간. 연합뉴스

방탄소년단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3만여 관객 이상을 수용하는 대형 경기장에 해외 가수 최초로 공연했다. 이번 방탄소년단 공연은 개방과 개혁에 나선 사우디아라비아의 변화에 맞물려 이뤄졌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경제ㆍ사회 개혁 프로젝트 ‘비전 2030’ 일환이다. 석유에만 의존하지 않고 관광 등을 통해 산업 구조를 다각화하려는 시도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엔터테인먼트를 통한 관광 산업 육성을 위해 방탄소년단 공연을 허가했다. 방탄소년단 공연 보름 전인 지난달 27일부터 한국 등에 관광비자 발급도 허용했다. K팝이 사우디아라비아 개방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보수적인 아랍권에서 K팝을 사회 변화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건 방탄소년단의 공동체 가치 추구에 의미를 둔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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