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숙 차의과학대 바이오공학과 교수
태어날 자녀의 건강과 성격, 체중은 엄마의 임신 중 혹은 임신 전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임신을 계획한다면 예비 엄마는 술과 담배를 끊고 커피와 인스턴트 식품 등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멀리해야 한다. 옛날 선조들이 태교를 매우 중요시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엄마의 역할 못지않게 아빠의 식습관 역시 태아의 건강을 결정하는 중요한 작용을 한다고 밝혀지고 있다. 연구자들은 아빠의 나이, 술과 담배 등 환경적 요인이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이후 몇 세대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후성유전학(後成遺傳學·epigenetics)적 변형에 기인한다고 밝히고 있다. 후성유전학은 후천적인 요소가 거의 선천적인 조건에 비슷하게 사고와 행동을 규정한다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다. 장수하게 만드는 유전자들이 음식과 환경에 의해 어떻게 조절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대표적인 이 분야 연구다.
생물학을 공부하고 강의하면서도 한없이 작아지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힘든 자연 현상이 많다는 것이다. 가장 기적 같은 일은 한 개의 수정란 세포에서 출발해 1조개에 달하는 세포로 구성된 온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 세포에는 DNA를 포함한 염색체가 23쌍이 있다. DNA는 엄마와 아빠에게서 받은 것으로 운명적으로 우리의 신체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를 결정해 주는 명령문 역할을 한다. 엄마 아빠와 닮기는 했지만 완벽히 절반씩 닮지 않은 이유는 엄마 아빠의 DNA가 거의 무제한적으로 조합해 개인의 독특한 특징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란성 쌍둥이를 생각해 보자. 그들은 DNA가 정확히 똑같지만 성장하면서 다른 특징을 나타낸다. 무엇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일란성 쌍둥이는 자라온 환경에서 부모님께 받은 유전자 서열은 똑같지만 개별 유전자의 발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주는 주요 분야가 바로 후성유전학이다.
미국 줄기세포학회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엄마가 술을 마신 적이 없는 데도 ‘태아 알코올 스펙트럼 장애’로 진단을 받은 신생아는 아빠가 알코올 중독자인 확률이 75%나 됐다. 이는 부계(父系) 알코올 소비가 자녀에게 적잖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아빠의 생활습관이 태아에게 후성유전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빠의 고령화는 출산할 자녀의 조현병, 자폐증, 선천적 결손율에 영향을 주고 아빠의 비만도 지방세포의 확대, 대사조절의 변화, 당뇨병, 비만 및 뇌암 발달과 관련이 있다고 여러 연구에서 보고되고 있다. 아빠가 겪고 있는 심리사회적 스트레스는 자녀에게 불완전한 행동 특성을 일으킬 수 있고, 아빠가 술을 많이 마시면 자녀가 출생할 때 체중뿐만 아니라 뇌의 크기가 줄어들고, 인지기능에 적잖은 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아빠의 영향은 여러 세대에 걸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여러 연구 결과에서 보여 주고 있다. 바로 후성유전자의 변형 때문이다. 후성유전자의 변형은 후대까지 유전이 된다고 알려져 있어 자녀를 두려는 아빠의 영향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앞으로 엄마와 아빠가 출생한 자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상호작용 연구가 더 필요하지만 자녀를 둘 아빠의 나이와 생활습관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됐다.
고령화 사회로 급속히 접어들면서 고령 임신도 늘어나고 있다. 이혼과 재혼이 증가하면서 30~40대 후반까지도 임신 시도를 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 ‘고령 아빠’의 숫자도 크게 늘어나 40~44세 초보 아빠의 수가 25~29세 초보 아빠를 넘어섰다고 한다.
동물 연구에 따르면 고령 아빠의 자손이 젊은 아빠의 자손보다 수명이 단축되고 노화 관련 병이 더 두드러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제 태교는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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