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이름·사진·직업·직장 공개 사이트 ‘배드파더스’ 국민참여재판
400명 공개, 108명 양육비 받아… 前배우자들 사이트 폐쇄 안되자 대표 등 고소
'양육비해결모임'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과 양육비 미지급 부모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혼 뒤 아이 양육비를 주지 않은 과거 배우자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한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할까. 양육비를 떼먹은 비양심적 부모 문제를 제기한 ‘배드파더스(Bad Fathers)’ 사건 재판이 시작됐다.

11일 수원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이창열) 심리로 열린 배드파더스 사건 첫 재판에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배드파더스 활동가 구본창(56)씨, 전모씨가 함께 법정에 섰다.

구씨는 예전 필리핀에서 영어학원 사업을 하다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버려진 ‘코피노’ 문제를 접하고서는 양육비 문제에 눈을 떴다. 이후 한국에서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를 개설한 뒤 양육비 지급 약속을 지키지 않은 옛 배우자의 이름, 사진, 직업, 직장, 미지급액 등을 공개해왔다.

신상공개를 택한 건 다른 방법이 없어서다. 현행 법으로는 양육비 지급 의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지난 4월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2018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부모가족 가구주 2,500명 가운데 무려 73.1%가 양육비를 단 한번도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배드파더스는 적게는 2~3년, 많게는 15년 넘는 기간 동안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사람, 법적으로 분명한 결론이 났는데도 양육비 지급을 거부하는 사람 등을 공개하고, 양육비를 지급하는 즉시 이를 지우는 방식을 썼다. 지난해 7월 사이트 개설 이후 400여명의 신상이 공개됐고, 이 가운데 108명은 양육비를 지급했다.

[저작권 한국일보]한부모가족 양육비 지급 형태-박구원기자/2019-10-11(한국일보)

반발도 거셌다. 예전 배우자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배드파더스 사이트의 폐쇄를 요구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위원회는 공익성이 인정된다며 사이트를 차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예전 배우자들은 결국 구 대표 등을 고소했다. 검찰은 지난 5월 어쨌든 실명과 사진을 공개한 점 등을 문제 삼아 벌금 300만원에 약식기소했으나 법원은 사건을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직권으로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이날 재판에서 구씨 측 변호인은 "신상 공개와 관련된 전반적인 사실 관계는 인정하지만, 비방 목적이 아닌 공익 목적의 사실적시였다"라고 주장했다. 구씨 또한 "양육비 문제는 아동의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이기에 신상정보 공개는 공익적이고, 그렇기에 비방 목적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배드파더스라고 하지만 양육비를 주지 않는 무책임한 배우자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있다. 지금 배드파더스에 신상이 공개된 이들은 모두 99명인데, 이 가운데 남성은 72명, 여성은 13명, 코피노 남성은 14명이다. 남성 피해자는 이날 구씨와 함께 법정에 선 전씨가 대표적이다. 전씨는 배드파더스에 이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다 전 부인의 신상을 별도로 공개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씨는 “전 부인에게서 ‘알아서 키워라’는 말만 들었다”며 “신상공개 글을 올린 것은 두 딸의 치료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라 호소했다.

재판부는 배드파더스 활동가 구씨와 전씨의 요청을 받아들여 재판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키로 했다. 다음달 15일 두 번째 재판을 열어 쟁점을 정리하고, 향후 재판 일정을 구체적으로 정할 예정이다. 구씨 측 변호인은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 공개의 공익성을 입증하기 위해 양육비 실태조사 자료, 필요한 제도개선안에 대한 의견 등을 정리해서 재판부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원=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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