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 ‘레미제라블’
라주 리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첫 방문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프랑스 영화 ‘레미제라블’의 주연배우 다미엥 보나르(왼쪽)와 연출자 라주 리 감독이 제24회 부산국제영화를 찾았다. ‘레미제라블’은 야외 상영 5,000석을 가득 채우며 큰 화제를 모았다. 부산=김표향 기자

“프랑스와 전 세계 도처에 있는, 모든 ‘비참한 사람들(레 미제라블ㆍLes Misérables)’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비수처럼 날카로운 외침이 올해 칸국제영화제를 뒤흔들었다. 첫 장편 영화로 경쟁부문에 진출해 심사위원상을 거머쥐며 파란을 일으킨 ‘문제적 감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과 함께 올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는 화제작 ‘레미제라블’이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한국 관객과 만났다. 6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열린 야외 상영회는 쌀쌀한 날씨에도 5,000개 좌석이 빈틈 없이 들어찼다. 7일 인터뷰로 마주한 라주 리(41) 감독은 “수많은 관객들이 모인 광경이 아주 놀라웠고 뜨거운 환대를 받아 기뻤다”며 지난 밤을 감격스럽게 떠올렸다.

‘레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 제목을 빌려 오늘날 프랑스 사회의 그늘을 파헤친다. 영화의 배경은 파리 외곽 도시 몽페르메유. 빈민가를 장악한 범죄 조직과 부패한 경찰 사이에 불안한 평화가 이어지던 어느 날 서커스단의 새끼 사자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절도 전력이 있는 동네 아이들을 불심검문하다 폭력을 휘두르고, 우연히 그 광경을 한 소년의 드론 카메라가 포착한다. 경찰이 사건을 덮느라 급급한 사이, 분노가 폭발한 소년들은 폭력적인 경찰과 이기적인 어른들에 맞서 전면전을 선포한다. 리 감독은 “우리는 모두 폭력적인 시스템 속에 살고 있다”며 “불행히도 빈민가 아이들은 폭력 말고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폭력에 노출된 빈민가 아이들이 또 다른 폭력을 저지르는 비극을 그려 내며 무능한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묻는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폭력이 더 큰 폭력을 낳는 비극의 아이러니는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주제로 확장된다. 리 감독은 지난해 11월 유류세 인상에 반대해 시작된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를 거론했다. “정부는 시민의 대화 요구에 응하는 대신 경찰을 앞세워 폭력을 휘둘렀어요. 그러면 반대편에서도 폭력이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요가 벌어진 뒤에야 정부도 시민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고요. 멀게는 프랑스 혁명, 가깝게는 2005년 파리 소요 사태도 그런 사례죠. 폭력을 결코 지지하지 않지만, 때로 폭력이 동반돼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봅니다.”

빈곤과 소외로 인한 분노, 공권력의 폭압은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도 떠오른다. 영화가 영화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리 감독은 “사회 문제에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건 매우 정당하며 홍콩 시민의 싸움을 지지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레미제라블’은 정치인들에게 보내는 경고장입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이 영화를 관람하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라주 리 감독은 빈곤과 폭력의 연쇄 고리는 정치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레미제라블’은 아프리카 말리 출신인 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배경인 몽페르메유도 그가 살고 있는 동네이고, 구체적인 사건도 모두 실화다. 10년 전 경찰이 수갑을 채운 소년에게 폭력을 가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인터넷에 공개했던 경험을 토대로 2017년 단편 영화를 만들었고, 그 단편을 장편으로 다시 만들었다. 경찰 역할 3명을 제외한 모든 배역에 실제 주민들을 캐스팅했다. 15년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리 감독의 공력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영화는 소년과 경찰의 대치가 극한에 다다른 상황에서 끝을 맺는다. 열린 결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관객 각자의 몫이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무능한 정부에 있어요. 이 영화는 정치인들에게 보내는 경고장입니다. 서로 마주 앉아 대화와 토론을 한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이 영화를 통해 변화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몽페르메유는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집필한 도시이기도 하다. 엔딩에는 위고의 문장도 인용됐다.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리 감독은 “다음 영화도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21세기 레미제라블’은 새로 쓰이고 있다.

부산=글ㆍ사진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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