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를 만든 건, 돈에 눈먼 자본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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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만든 건, 돈에 눈먼 자본가들이었다

입력
2019.10.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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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히틀러를 그린 벽화. 배경에 히틀러를 권좌에 올려놓은 독일의 기업가와 은행가가 있다. 원래는 뉴욕 록펠러센터 내부를 장식하기 위해 그려졌지만, 록펠러가문에서 불쾌하다며 파괴했다고 한다. 오월의 봄 제공

인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비극을 저지른 아돌프 히틀러는 어떻게 세상에 등장하게 됐을까. 지금까지 역사가들의 분석은 이랬다. 악랄한 사이코패스의 일탈로 개인 히틀러의 문제로만 치부하거나, 힘 없고 평범한 독일인들이 어리석게도 ‘사회주의자’ 히틀러에 열광해 권좌에 올려놨다고 우매한 대중 탓을 했다. 히틀러는 투표가 낳은 민주주의의 괴물이었다는 거다.

캐나다의 역사학자 자크 파월은 이는 진실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파월은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에서 히틀러를 만든 진짜 범인은 다름 아닌 독일과 미국의 자본가들이었다고 지목한다. 책은 파시즘과 자본주의의 기묘한 동거를 역사적 고증을 거쳐 촘촘하게 파헤친다.

일개 군인 출신으로 소수 극우정당을 이끌었던 히틀러는 애초 독일 재계의 관심 대상이 아녔다. 히틀러가 눈에 띄기 시작한 건, 1929년 대공황 이후다. 이미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경제가 무너질 대로 무너진 독일에서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혁명을 향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좌파 공산당으로 기우는 걸 막아야 했고 히든 카드로 히틀러를 전면에 내세웠다. 히틀러는 결코 사회주의자가 아녔지만 유대인 자본주의를 파괴하겠다는 논리를 내세워 노동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자본가들에게 히틀러는 노동자들의 혁명 욕구를 저지해주는 방파제였다. 또 강한 독일을 내세우며 ‘재무장’을 추진하는 히틀러는 더할 나위 없는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우리가 히틀러를 고용했다’는 독일 특권층의 외침은 빈말이 아니었다.

자본가들의 끔찍한 히틀러 사랑은, 무자비한 정복전쟁을 벌이고 홀로코스트를 자행할 때도 중단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히틀러를 숭배한 자본가들은 전쟁 범죄의 공범자였다. 이게파르벤, 지멘스, 다임러-벤츠 등 전쟁 물자를 만들던 공장에서 수많은 유대인과 동유럽인은 노예 노동으로 착취됐고, 노동력이 상실되면 가스실로 내몰리거나, 생체 실험 동물로 활용돼 죽어갔다. 미국 기업가들도 예외는 아녔다. 제너럴모터스는 나치 군대가 사용할 트럭, 비행기를 생산했고, IBM은 유대인 희생자 명단과 노예노동을 관리할 수 있도록 홀러리스 계산기를 제공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히틀러가 몰락했을 때도 이들은 건재했다. 어용 역사학자들을 동원해 히틀러를 악마화하고 자신들은 피해자로 행세하면서 나치 협력의 흔적도 싹 지웠다. 결국 히틀러는 꼭두각시였고, 최종승자는 자본가들이었던 셈이다.

히틀러와 나치는 역사의 뒤안길로 저물었고, 전 세계에 민주주의는 정착됐다. 그렇다고 파시즘도 사라졌다고 할 수 있나. 파월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파시즘은 자본가들이 수익 극대화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언제든 다시 호명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충분히 높은 수익만 달성할 수 있다면 히틀러보다 더한 독재자에게도 협력하려 들지 모른다. 또 다른 히틀러의 등장을 막기 위해서, 자본가들의 추악한 민낯을 들춰내고 알아차리는 수밖에 없다고 책은 강조한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자크 파월 지음ㆍ박영록 옮김

오월의 봄 발행ㆍ432쪽ㆍ2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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