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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이미 만성형 경제위기 진입… 혁신ㆍ포용의 시장경제로 전환을”

입력
2019.10.10 20:0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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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오른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7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 퍼스 연구실에서 장인철 논설위원과 대담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성태윤(오른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7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 퍼스 연구실에서 장인철 논설위원과 대담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어떤 상황이 경제위기일까. 1997년 외환위기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듯 느닷없이 닥쳐 일시에 수많은 기업과 은행을 무너뜨리고 대량 실업 한파를 몰고 왔으니, 분명 경제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질병에도 급성과 만성이 있듯, 경제위기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게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의 시각이다. 그런 맥락에서 성 교수는 경기 하강세가 통상적인 경기순환 사이클에서 이례적으로 이탈해 장기 침체 조짐까지 보이는 지금 상황을 ‘만성형 경제위기’로 진단한다.

지금 우리 경제가 직면한 위기의 여파는 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보다 장기적으로 훨씬 심각할 수 있다. 글로벌 경기둔화나 미중 무역전쟁 같은 대외 여건은 호전될 수 있지만, 스스로 우리 경제를 망친 잘못된 정책부터 고쳐야 위기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성 교수는 “지금의 위기를 부른 내부 요인은 최저임금 과속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 강행 같은 정부의 무리한 시장 개입”이라며 “적어도 시장이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성 교수는 학계에서도 손꼽히는 국제금융과 거시경제 부문의 파워 이코노미스트다. 한국경제학회 ‘청람상’을 수상했다.

-수출ㆍ투자ㆍ소비가 모두 정체, 또는 위축되면서 잠재성장률에도 훨씬 못 미치는 1%대 성장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현재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사실상 위기 국면이다. 경기는 하강과 상승이 되풀이되는 일반적인 순환 사이클이 있다. 지금 그런 정상 사이클에서 이탈했다고 보기 때문에 위기를 말하는 것이다. 급격히 경기가 변동하는 위기도 있지만, 지금처럼 경기가 내려간 다음에 회복세를 타지 못하고 내려간 상태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것 역시 또 다른 위기라고 생각한다. 만성 질환에 걸린 것 같은 위기인 셈이다. 이게 왜 문제냐 하면, 만성형 위기에 다른 쇼크가 겹쳐지면 상황이 더 급격히 악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위기에 빠진 건 대외 요인 악화 외에, 디플레이션과 노동 비용 충격이 겹쳐지고 있어서다. 디플레이션이 진행되면서 경제가 하강하고 있고, 추가적인 충격이 가해지면서 거의 모든 지표들이 악화하고 경기가 아예 고꾸라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비용 충격‘을 말씀하셨는데,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서도 특히 우리 경제 상황이 부진한 이유로 정책적 충격이 작용했다는 건가.

“그렇다. 우리 경제는 지금 제 11순환의 하강 국면을 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017년도 3분기에 경기가 정점을 찍고 점차 하강하는 타이밍이었는데, 그 때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린 것이다. 그렇게 발생한 노동비용 충격이 일반적인 하강 국면을 위기 국면으로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이 기업경영에 미친 영향을 짚어보면,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기업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20%다. 최저임금에 더 큰 영향을 받는 노동집약 업종은 30%에 이른다. 그런 기업에서는 최근 2년 간 최저임금이 30% 올랐기 때문에 매출의 9%에 해당하는 이윤이 임금으로 잠식되는 상황을 맞게 된다. 국내 제조업 평균이익률이 6%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이 느끼는 타격이 얼마나 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근로시간 단축 충격까지 덮치면서 기업들로서는 아예 해외이전을 도모하거나, 인력을 설비로 대체해서라도 고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지금 두 가지 현상이 다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 좌담회에서 우리나라가 사실상 디플레이션과 결합된 일본식 장기 침체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그렇게 진단한 근거는 무엇인가.

“일단 디플레이션이 진행 중인 것으로 판단하는 이유는 크게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물가지표 자체가 사실 마이너스로 전환된 상태다. 가장 중요한 게 GDP 디플레이터다. GDP 디플레이터는 한 나라 경제의 전체적인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나타내는데, 이게 3분기째 마이너스다. 거의 1년째 마이너스다. 이 정도면 상당히 심각하다. 다음으로 소비자 물가지수와 생산자 물가지수가 동시에 마이너스다. 이런 상황이 과거 일본 장기 침체 초기와 유사하다고 보는 이유는 우선 자산가격의 하락세다. 과거 일본은 침체 진입 초기에 버블이 붕괴되면서 부동산과 주식이 급락했다. 지금 우리 상황은 다르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증시는 지지부진하고, 부동산은 서울과 수도권만 주로 봐서 그렇지 지방 곳곳에서 하락세가 뚜렷하다. 특히 ‘부울경‘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지역은 매우 심각한 부동산 가격하락이 이미 진행중인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일본과의 유사성은 경기 하락기에 추진된 근로시간 단축이다. 200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에드워드 프레스콧 애리조나주립대 교수는 하야시 후미오 도쿄대 교수와 함께 쓴 ‘잃어버린 일본의 1990년대’라는 논문에서 일본이 불황 초기인 1988~1993년에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바꾸는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했는데, 그걸 장기 침체 진입의 핵심 원인으로 분석했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과속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도 경제 전반에 비슷한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일본 장기 침체에 그렇게 심각하게 작용했나.

“생산성이 증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근로시간을 단축한 게 문제였다고 본다. 추가 고용 여력 없이 투입 노동시간만 줄어드니 당연히 전체적 하락이 이루어진다. 이런 문제가 당시 엔고 상황에 따른 경기 둔화와 맞물려 성장률이 90년대 4%였던 게 2000년대에 1.5%대로 2.5% 포인트 떨어진다. 엄청난 추락이다. 우리도 2017년 3.2%였던 성장률이 지난해 2.7%로 떨어졌다. 올해는 1%대까지 우려되는데, 3%대에서 1%대로 2% 포인트 내외 성장률 하락이 장기화한다는 건 엄청난 얘기다.”

-‘J노믹스‘든 ‘소주성’이든 양극화와 고령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사회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측면에서 정책적 정당성이 있었다고 본다. 그럼에도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컸던 원인을 말해 달라.

“양극화 완화나 공정경제 등을 정책 목표로 삼은 건 타당하다. 다만 정책의 패러다임이나 디테일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본다. 일례로 우리나라 소득불평등 정도는 OECD 회원국 중 중간 정도다. 따라서 전반적 소득불평등보다는 정말 가난한 사람들, 소득 최하위계층의 빈곤 해소가 우선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럼에도 빈곤 문제 해결을 뛰어넘어 대뜸 전반적 소득불평등부터 해소한다며 정부가 직접 임금 조정에 나섰다. 그게 시장에 충격을 주면서 오히려 최저임금 선상의 근로자들이 실직하고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입는 부작용이 더 커졌다. 근로시간 단축도 비슷하다. 미국을 보면 우리처럼 시간을 획일적으로 제한하진 않는다. 40시간 초과 근로에 대해 임금의 1.5배를 주도록 하는 식이다. 사용자로서는 꼭 필요한 경우 연장근무를 시킬 수 있고, 근로자로서도 돈을 더 벌고 싶으면 일을 더 할 수 있는 방식이다. 또 임원이나 1억 이상 되는 연봉을 받는 사람한테는 시간외수당을 주지 않도록 하는 예외도 둔다. 그런 식의 유연성이 필요한데 전면적이고 획일적으로 도입하다 보니 심각한 국면을 맞게 됐다.”

-당장 경기 부진 못지않게 성장 기반이 약화하는 구조적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도 많다.

“구조적 상황 심각하다. 구조개혁 하려면 경쟁력과 생산성이 떨어진 산업을 원활히 재편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재편을 가장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가 노동시장 경직성 문제다. 인력 재배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으니 실제론 기업이 망할 때까지 구조개혁을 할 수 없다. 둘째는 구조개혁이 되려면 내외국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최근 각종 경영규제가 강화되면서 자칫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되고 그로 인해 투자사업 자체는 물론, 투자자산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주 52시간 규정을 어기면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식이다. 이런 불확실성이 늘어나 투자를 꺼리게 만든다.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불공정 경쟁 상황도 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섣불리 나서기보다는 건전한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기반을 조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산업 재편이든 차세대 성장동력이든 내실 있는 성과를 거둘 것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에서 ‘민부론’을 내놨다. ‘소주성‘의 대안 정책으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부의 지나친 직접 개입 등을 비판하면서 민간과 시장경제의 활력을 강조하는 건 긍정적이다. 그런데 시장경제가 아무거나 다 풀어준다고 시장경제가 되는 건 아니다. 자칫 잘못된 과거로 회귀할 수도 있다. 시장경제도 시장이 공정한 경쟁 속에서 잘 움직이도록 만들어 주는 부분이 필요하고, 적절한 책임도 부여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더 담아야 할 것 같다. 현 정부의 ‘소주성’이 실패했다고 대뜸 반대편 극단으로 가기 보다는, 시장경제 속에서도 양극화 완화라든지 공정한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한다든지 하는 당연한 부분은 수렴해야 한다.”

-“‘혁신과 포용의 시장경제’로 정책을 전환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그 내용은 무엇인가.

“시장경제가 그나마 가장 덜 나쁜 시스템이라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지금 우리 경제에 절실한 두 가지 과제는 혁신과 포용이다. 혁신은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한 것이고, 포용은 시장경제 취약점 극복을 위한 보완의 문제다. 방점은 시장경제에 있다. 두 가지 과제를 이루는데 있어서 정부가 지나치게 나서서 시스템에 직접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최소한의 여건을 마련해 시장원리에 의해 해결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어떤 경제담론보다도 중요한 건 구체적인 정책시행에 있어서의 정확한 현실 인식과 해법의 유연성이다. 그걸 위해서도 시장의 틀에서 상황을 보는 게 절실하다.”

인터뷰=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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