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풀’의 김금숙 작가 
만화 ‘풀’을 그린 김금숙 작가가 지난 4일 인천 강화군 자택에서 반려견 감자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환직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다시는 전쟁 희생자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평생 숨기고 싶었던 아픔을 밖으로 꺼냈다. 제 책이 상을 받거나 수상 후보가 되면 이런 할머니들의 바람이 재조명된다. 개인적인 영광이나 기쁨보다는 그 것에 더 의미를 두고 싶다.”

위안부 피해 여성의 삶을 그린 만화 ‘풀’이 올해 7월 프랑스 만화 비평가협회(ACBD) 아시아만화상 최종 후보에 오른 데 이어 지난달 프랑스 주간지 휴머니티가 주관하는 휴머니티 만화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큰 ‘망가(만화의 일본어)’ 시장으로, 위안부 피해를 다룬 한국 만화를 출판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현실에서 얻은 결과였다.

2014년 프랑스 앙굴렘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자 기획전시회에서 단편 ‘비밀’을 발표한 뒤 ‘미자 언니’ ‘풀’ 등 위안부 피해 여성을 조명하는 작품을 잇따라 선보인 김금숙(48) 작가는 “인권을 유린 당한 한 인간이 트라우마를 어떻게 견뎌내고 다시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지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우리에게 보여줬다”고 말했다.

16세에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55년이 지나서야 고국 땅을 밟은 이옥선(92)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그린 ‘풀’은 피해자가 아닌 평화운동가이자 인권운동가인 할머니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휴머니티 심사위원단도 “이옥선 할머니의 겸손하고 활력이 넘치는 놀라운 삶의 의지가 1940년대 한국사회의 상황과 함께 잘 표현돼 있다”고 평했다.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등 7개 언어로 해외 각국에서 출간된 풀은 내년 1월 일본에서도 출간된다.

김 작가는 최근 인천 강화도 자택에서 가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 하면 막연하게 ‘슬프다’ ‘아프다’라는 감정을 떠올리지만 직접 만나 보면 삶을 즐기려는 의지가 굉장히 강하다”라며 “할머니들의 에너지, 인간적인 면을 그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피해자 대부분이 하층민의 딸들이었던 위안부 문제는 계급ㆍ젠더ㆍ인권 문제라고 강조한 김 작가는 2012년 자전적 이야기 ‘아버지의 노래’로 정식 데뷔한 이후 소외된 이들에게 꾸준히 포커스를 맞춰왔다. 그는 제주 4ㆍ3 사건을 다룬 ‘지슬’, 우리나라 원폭 피해자 이야기인 ‘할아버지와 보낸 하루’ 등을 그렸다.

그는 “모든 인간은 가난, 저학력, 얼굴색 등 다양한 이유로 집단에서 소외된 존재”라며 “빛 쪽에 있지 않고 어둠에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이 작업이 뜻 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만화 ‘풀’ 영문판 표지(왼쪽)와 프랑스어판 표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제공

순수미술을 전공한 김 작가는 서른 살이 넘어 만화와 인연을 맺었다. 1994년 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훌쩍 떠난 그는 스트라스부르 미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실력도 인정 받았다. 이에 따라 2003년 파리로 건너가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길 꿈꿨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작품이 너무 하고 싶어서 연필과 종이만 있으면 되는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라며 “한국 커뮤니티 주간지에 프랑스에 사는 한국여자아이의 삶을 그린 3칸짜리 만화를 연재했는데, 4년간 돈을 받지 않았고 이후 2년간은 매주 50~60유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 작가가 본격적으로 만화 작가가 돼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만화 번역 때문이었다.

그는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한국 만화를 100권 이상 프랑스어로 번역했다”라며 “2007~2008년쯤 이희재 선생의 ‘간판스타’와 오세영 선생의 ‘부자의 그림일기’라는 작품을 번역했는데, ‘만화로 우리 사회 얘기를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진지하게 만화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2011년 프랑스인 남편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잠시 귀국했던 김 작가는 한국 문화에 반한 남편 덕분에 이후 한국에 눌러 앉았다. 북 콘서트를 하기 위해 강화도를 찾았다가 자연 풍경에 반해 올해 이사까지 했다는 그는 현재 성남문화재단 독립운동가 웹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공산주의자로, 레닌이 이끄는 러시아 볼셰비키당에 가입해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애쓴 한인2세 김알렉슨드라의 삶을 그린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를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8월부터 연재 중이다.

고 박완서 작가의 등단작 ‘나목’을 그래픽노블(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태)로 만드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전쟁 후 미8군 PX에서 일할 때 만난 박수근 화백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창작한 나목은 당시 샐러리걸과 그 가족, 예술가들을 전쟁이 어떻게 바꿔놨는지를 그린 작품이다.

김 작가는 “나목은 11월 말쯤 국내에서 출판하고 내년에는 프랑스에서도 출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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