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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이런’ 586은 어떤가

입력
2019.10.09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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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로 ‘운동권 586’ 동네북 신세

586 비판에도 다른 586이 채울 수밖에

내년 총선서 ‘어떤 586’ 선택할지 고민을

이인영(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뉴스1
이인영(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뉴스1

이른바 ‘조국 사태’의 소용돌이 속에서 ‘586 세대’는 위선과 불공정, 불평등, 부도덕의 화신으로 비난받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비난은 ‘운동권 586’을 향해 있다. 대학 시절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에서 권력을 거머쥐었고, 진보와 정의와 공정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온갖 기득권과 혜택을 다 누린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들의 지향과 고민, 노력에 대한 평가는 끼어들 자리가 없다.

‘(운동권) 586’은 지금 동네북 신세다. 한 동년배 학자는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586 카르텔이 얼마나 공고한지를 분석한 뒤 후세대가 이들의 진입 장벽에 가로막혔다고 주장한다. 몇몇 후세대는 586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수혜자이자 30년 장기 집권 세대로 규정하며 ‘헬조선’이 이들의 ‘미필적 고의’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의 실질적인 요구는, 특히 결론만 놓고 보면, “현 시간부로 사회 활동을 멈추라”는 것과 다름 없다.

사실 ‘(운동권) 586’이란 개념은 일종의 허상에 가깝다. 출생자는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860만명이지만 대학 진학률은 30%에 불과했다. 50대가 사회 각 분야의 주축인 것 자체가 문제일 수도 없다. 1980년대는 3저(저달러ㆍ저유가ㆍ저금리) 호황에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 여건도 개선됐다. 고용 불안과 고용없는 성장을 내재한 IMF 체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와 직접 비교하기도 어렵고 경제ㆍ사회 시스템의 변화를 무시한 채 지금 후세대의 어려움을 586의 욕심 때문이라고 보기는 더 어렵다.

그렇더라도 ‘(운동권) 586’이 갖는 세대적 상징성, 특히 정치인의 과잉대표성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들에게 유능한 정치력과 무한한 도덕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건 이유야 어찌됐든 현실이다. 진보ㆍ보수 진영을 가리지 않고 내년 총선에서 ‘(운동권) 586’을 물갈이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하지만 50대 전체를 배제하는 게 아닌 이상 그 빈 자리의 상당 부분이 ‘다른 586’으로 메워질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후세대의 정치세력화 여부는 예단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우리 정치의 현실과 수준이 아직은 그렇다.

그래서 묻고 싶다. ‘이런’ 586은 어떤가. 엄혹했던 전두환ㆍ노태우 군사독재 정권 시절 대학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한 모범생들, 그래서 사법ㆍ행정고시 합격해서 판사ㆍ검사가 되고 행정부처 5급 공무원이 돼서 일찍부터 사회 지도층이 지녀야 할 소양을 쌓아온 이들, 부모 소유의 사학재단에서 이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거나 명성 자자한 언론사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은 이들 말이다.

판ㆍ검사로, 기자로 일하는 동안 몇몇 조작 사건에 일부 연루됐거나 사회적 약자의 손을 잡아주는 데 인색했으면 좀 어떤가. 지금이야 권력에 부역했다고, 사회의 공기로서의 역할을 망각했다고 비판받겠지만 당시에는 그게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었던 것을. 자녀들 진학에 아는 인맥을 활용하고 비상장주식 증여 등으로 절세해가며 부를 대물림해 주면 어떤가. 원래 다들 그렇게 해왔고 지금도 하는 것을. 무엇보다 “우리는 다르게 살 것”이라고 단 한 번도 얘기한 적 없으니 얼마나 일관되게 살아온 것인가. 이들이 최근 내세운 ‘민부론’에 대해 성장 위주의 반노동ㆍ친기업이라는 평이 많은 것을 보면 국가 운영의 청사진 측면에서도 얼마나 수미일관한가.

문재인 정부의 한 축인 ‘(운동권) 586’이 비판받아야 할 지점은 무수히 많다. 노동ㆍ사법ㆍ교육ㆍ정치 개혁의 지지부진,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 성과의 부족 등은 무능으로 비쳐질 정도다. 이들에게 기대를 걸었던 수많은 시민들의 비판과 실망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누구는 ‘독재 타도’ 한마디 구호를 위해 인생을 걸었던 그 시절에 서둘러 기득권의 삶을 좇았고 그 덕에 지난 20~30년간 기득권을 누려온 586으로 그 빈 자리를 채우자는 데는 좀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양정대 논설위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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