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넘어선 엘리트 언론의 객관성
진보 정치의 후원자들 몰락시키고
새 가치 기준에 대한 합의 이뤄
미투 운동 확산이 만 2년을 맞았다. 여기서 그 계기를 만든 2017년 10월 5일 자 뉴욕타임스 기사를 돌아보고 싶다. 그 이유는 직업 언론인이 보도한 뉴스가 윤리기준을 크게 옮겨놓았고, 적어도 그 변화의 큰 방향에서 세계적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진은 ‘미투 운동’을 촉발한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2018년 12월 20일 미국 뉴욕 대법원으로 걸어가는 모습. AP연합뉴스

오래전 디지털혁명의 선지자들이 뉴스의 종언을 예언했다. 인터넷에 무한한 정보가 있고, 모든 시민이 이를 얻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콘텐츠를 만들어 퍼뜨릴 수 있다. 그렇게 정보 독점이 끝나 매스컴은 의미가 없어지고, 직업으로서 저널리스트도 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타난 건 뉴스의 홍수다. 매스컴은 없어지지 않고 다만 편을 확실하게 갈랐다. 내가 누구 편이냐는 정체성을 자극하면, 사람들은 그 기준으로 뉴스를 선택한다. 그래서 더 끼리끼리 뭉치고 더 편향된 정보에 갇힌다. 무한한 정보를 누구나 자유롭게 고르게 했는데, 아무도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게 됐다. 탈진실시대의 역설이다.

이런 가운데 미투 운동 확산이 만 2년을 맞았다. 여기서 그 계기를 만든 2017년 10월 5일 자 뉴욕타임스 기사를 돌아보고 싶다. 그 이유는 직업 언론인이 보도한 뉴스가 윤리기준을 크게 옮겨놓았고, 적어도 그 변화의 큰 방향에서 세계적 합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정치적 컨센서스가 사라진 요즘 어느 나라에서건 드문 일이다. 그렇기에 분열의 시대에 언론이 지향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줄지 모른다.

먼저 할리우드 거물 하비 와인스타인의 반복된 범죄가 왜 오랫동안 덮여 있었는지 살펴야 한다. 다음 유명인사의 성폭행 폭로가 처음이 아닌데 유독 와인스타인의 몰락이 사회운동으로 확산하고 새 가치로 이어졌는지 물어야 한다. 30여년 계속됐다는 그의 행동은 클릭 몇 번으로 영상을 수백만명에게 보낼 수 있는 세상이 된 뒤에도 오랫동안 가려져 있었다. 기사를 쓴 조디 캔터와 메간 투이는 “아무도 그를 해칠 수 없다는 벽(Wall of Invulnerability)”이 지키고 있었다고 말했다. 와인스타인은 5000만달러의 명예훼손소송을 제기하면서 뉴욕타임스에 성명을 보냈다. 여기에 그 벽이 어떤 것인지 드러나 있다. “트럼프와 미 총기협회 (NRA)를 타도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 트럼프와 NRA 회장은 같은 날 은퇴할 것이다… 여성의 권리를 위해 계속 노력해 남캘리포니아 대학에 여성 감독을 위한 500만달러 기금을 만들고 있다…”

권력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일을 강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갈라져 대결하는 시대에 권력은 내부에서 더 강하게 발휘될 때가 많다. 상대 진영보다 같은 편 권력자가 나를 움직인다. 정치와 도덕이 범벅이 된 힘이다. 와인스타인의 편에는 민주당 및 여성계 지도자들이 있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오랜 동지이고, 오바마 부인 미셸은 고교생들에게 “와인스타인 같은 사람이 돼라”고 연설을 했다. 페미니즘의 얼굴이었던 글로리아 스타이넘 기금을 만든 것도 와인스타인이다. 소송을 맡고 조언한 리사 블룸은 저명한 여성인권 변호사다. 촘촘한 네트워크 속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람들이 와인스타인의 범행을 지키는 벽을 더 높게 쌓았다.

벽에 균열을 내는 건 내부의 가격이다. 사건 수개월 전엔 폭스뉴스의 보수 논객 빌 오라일리가 성폭력으로 쫓겨났다. 이 또한 뉴욕타임스의 보도였다. 미 보수정계의 흑막인 폭스뉴스 창업자 로저 에일스도 성폭력이 폭로돼 쫓겨났다. 하지만 와인스타인 같은 파장은 없었다.

언론의 가치는 여전히 객관성(Objectivity)이란 전통적 덕목에 있다는 걸 미투운동은 알려주고 있다. 이는 정치적 목표가 같아도 권력자와는 여러 발자국 떨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권력 남용을 감시하기 위해선 불가피하다. 현대정치가 생존을 걸고 싸워 노예와 토지를 얻는 원시부족사회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극한 대결 속에서 자기 편을 비판하는 일은 이적행위로 비친다. 미국 진보층에서도 ‘#CancelNYT’라는 것이 있어 “감히 누구를 가르치려 드느냐” 는 등 뉴욕타임스에 대한 공격이 빈발한다. 그래서 모든 언론이 그런 길을 갈 수는 없다. 상당수는 그럴 생각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트 매체에 객관성과 권력 비판은 디지털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의미가 된다. 그것은 파편으로 쪼개진 사회를 수습하는 희망일 수도 있다.

유승우 뉴욕주립 코틀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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