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채무자를 상대로 금융사가 채권 소멸시효를 연장하며 빚의 굴레를 씌우는 관행을 막기 위해 금융당국이 ‘소비자신용법’을 새로 만들기로 했다.
8일 금융위원회는 ‘개인연체채권 관리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소비자신용법(신용법)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금융권이 위기에 빠진 채무자의 재기를 돕기보단 가혹한 추심으로 채권 회수에만 몰두한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런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법이 마련되면 금융사들이 무작정 채무자의 채권 소멸시효를 연장하는 일에 제동이 걸린다. 원래 금융채무 시효는 채무자가 원리금을 연체한 날부터 5년이 지나면 소멸하지만, 일부 금융사들은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직전에 소송을 거는 방식으로 시효를 연장해 왔다. 금융위는 연체기간이 길어질수록 채무자의 상환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소멸시효를 무기한 연장하기보단 회수 가능한 범위 내에서 설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채권자와 채무자 간 채무조정 절차도 생긴다. 신용법은 연체 채무자가 요청하는 경우 채권자가 채무조정 협상에 의무적으로 응하도록 계획이다. 채무조정 여부와 조정 폭은 채무자 사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해지게 된다. 채무조정 협상 중에는 채권 추심을 금지하는 보호장치도 법에 담길 예정이다. 금융사에 비해 약자인 채무자가 채무조정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지원하는 ‘채무조정서비스업’도 도입될 전망이다.
맨 처음 대출을 해준 ‘원채권자’의 소비자 보호 의무도 생긴다. 통상 금융사가 연체 채권이 생기면 이를 외부 추심업자에 추심을 위탁하거나 채권을 대부업체 등에 팔아 넘기기도 하는데, 이 경우 원채권을 보유했던 금융사가 부당한 채권추심이 이뤄지는 건 아닌지 모니터링해야 한다. 대부업체 등으로 채권이 넘어가면 추심의 강도가 강해져 채무자 생활을 위협하는 일이 왕왕 벌어지는 터라 이를 막기 위한 조치다.
금융위는 현행 대부업법을 전면 개정하는 방식으로 신용법을 제정할 계획이다. 외부전문가들로 구성된 TF가 신용법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 미국 등 해외사례를 참고해 국내 실정에 맞게 준비해 나가기로 했다. 금융위는 내년까지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2021년 하반기부터 시행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명순 금융소비자국장은 “채무자의 상환능력이 악화되기 전에 채무조정이 이뤄지면 채권 회수 면에서 채권자에게도 이익이 있어 상호 ‘윈윈(Win-Win)’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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