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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17세로 다시 돌아간다면 배우는 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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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미 “17세로 다시 돌아간다면 배우는 되지 않을 것”

입력
2019.10.07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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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지미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특별 프로그램 ‘김지미를 아시나요’로 4일부터 사흘간 야외무대에서 팬들을 만났다. 김지미는 “배우로 사느라 인간 김지미로 못 해 본 일을 하면서 요즘 매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 김지미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특별 프로그램 ‘김지미를 아시나요’로 4일부터 사흘간 야외무대에서 팬들을 만났다. 김지미는 “배우로 사느라 인간 김지미로 못 해 본 일을 하면서 요즘 매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열일곱 살에 우연히 길에서 김기영 감독의 눈에 띄어서 데뷔했어요. 배우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얼떨결에 이 길로 들어섰는데 오늘날까지 오게 됐네요. 일도, 가족도, 사랑도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어요.”

배우 김지미(79)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특별 프로그램 ‘김지미를 아시나요’에 초대돼 지난 62년 연기 인생을 돌아봤다. 4일부터 사흘간 부산 남포동 비프(Biff)광장에서 열린 야외 상영회와 토크쇼는 김지미를 환영하는 중장년 팬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6일 남포동에서 마주한 김지미는 “야외 스크린에서 영화를 상영한 건 처음”이라며 “오랫동안 사랑해 주고 기억해 준 분들께 답례를 하고 싶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김지미는 1960~70년대 절정의 인기를 누린 한국 영화계 최고의 스타다.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해 정진우 감독의 ‘춘희’(1967), 김수용 감독의 ‘토지’(1974),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5) 등 무려 7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전쟁의 폐허와 가난, 독재 정권의 탄압으로 고통받던 국민들은 그와 함께 울고 웃으며 위로받았다. 하지만 김지미는 “모든 영화가 내겐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며 아쉬워했다. “한창 바쁠 땐 여러 작품을 동시에 찍었어요. 영화 30편이 저만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나 부담스러웠겠어요. 12일 만에 촬영을 끝낸 적도 있어요. 요즘처럼 좋은 환경에서 충분히 여유를 두고 제작했다면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었을 텐데요.”

그 시절 김지미의 행보는 여느 배우들과는 달랐다.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린 문희, 남정임, 윤정희가 주로 청춘물에서 활약한 반면, 김지미는 당대 여성의 삶을 대변하는 인물을 선택했다. 멜로 주인공은 물론이고 가사 도우미, 유흥업소 종사자, 심지어 노인까지 연기 폭이 매우 넓었다. 그래서 여성 팬이 유난히 많았다. ‘원조 걸크러시’였던 셈이다. “저는 외모 덕에 배우가 됐지만 예쁘고 청순한 매력으로 사랑받는 배우는 아니었어요. 그 덕에 다양한 작품에 다양한 역할로 출연할 수 있었고, 배우 생명력이 길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김지미는 1980년대 중반 영화사 지미필름을 설립해 제작자로 변신했다. 서슬 퍼런 군사 독재 시절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사회 현실에 가 닿았다. 창립작부터 사회고발성 영화를 내놨다. 임권택 감독의 ‘티켓’(1986)이다. “영화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큽니다. 경제 성장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을 직접 취재한 뒤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영화가 ‘티켓’이에요. 결국 정부 검열로 숱한 장면이 잘려 나갔죠.” 제작사를 차린 것도 “저급 액션물 같은 흥행 장르에만 자본이 쏠리는 현실을 지켜보며 우리 스스로 온전한 정신을 담은 좋은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의지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1990년대에는 영화 관련 단체들에 수장으로 몸담기도 했다. 오로지 영화만을 위한 삶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랑스러운 타이틀은 역시 ‘배우’다. 김지미는 5일 열린 토크쇼에서 게스트로 참석한 전도연에게 “영원히 배우이고 싶은 꿈을 대신 이뤄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제 저의 시대는 지났어요. 제가 못다 이룬 꿈은 후배들이 이어가면 되는 거예요. 전도연을 비롯해 후배 여배우들이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 가며 좋은 배우가 돼 줬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선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김지미는 요즘 손주들을 돌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일하느라 바빠 사랑을 쏟지 못한 두 딸에 대한 미안함을 갚고 있다”고도 했다. 손주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지금 삶이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해요.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좋은 삶이에요. 다시 열일곱 살로 돌아간다면 절대로 배우가 되지 않을 거예요(웃음).”

부산=글ㆍ사진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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