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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싶은 길, 가고싶은 거리] 개발도 막혔던 거리가 첨성대보다 유명해졌다

입력
2019.10.18 04:40
수정
2019.10.18 10:0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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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주 황리단길

황남동 포석로와 대릉원 돌담길에 특색있는 상점 200여개 밀집

수년 전까지도 낙후지역… 市 지원과 상인들 자구 노력에 명소로

하늘에서 바라본 경북 경주시 황남동 황리단길 전경.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하늘에서 바라본 경북 경주시 황남동 황리단길 전경.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경주’를 수식하는 수많은 단어 중에 ‘무덤(고분)’을 빼놓을 수 없다. 신라 천년의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 경주 곳곳에 흩어져 있다. 경주 옛 시가지 가장 남쪽에 있는 황남동은 삼면이 무덤군이다. 북쪽과 동쪽은 대릉원, 남쪽은 황남동 고분군이 있다.

조금 더 떨어진 곳에는 첨성대와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계림, 석빙고 등이 남아 있는 월성, 경주향교와 최근 복원한 월정교 등 거대한 노천박물관을 접하고 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각종 건축 행위가 제한됐고, 개발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경주의 대표적 낙후지역으로 남았다.

이런 황남동이 수년 만에 전국적인 핫플레이스로 부상했다. 주변에 무덤이 지천인, ‘후진’ 골목길이 젊음의 거리로 변모했다. 요즘 황리단길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북새통을 이룬다. 친구나 연인끼리는 물론 중장년층도 호기심에 황리단길을 찾는다. 인도조차 없는 왕복 2차로의 길은 사람과 차량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얄개시대’를 연상케 하는 옛 교복 차림의 젊은이나 1970년대 양장을 빌려 입은 관광객, 신기해 죽겠다는 표정의 외국인 관광객 등 활력이 넘친다.

지난 주말 황리단길에서 만난 장윤경(31ㆍ대구 달서구)씨는 “할머니댁이 있어 경주에 자주 오는데, 이번엔 친구들과 순전히 우리를 위해 왔다”며 “골목골목 예쁜 카페와 신기한 가게가 많아 사고 먹고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고 말했다.

황리단길을 찾은 시민들이 길 곳곳에 있는 가게들을 둘러 보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황리단길을 찾은 시민들이 길 곳곳에 있는 가게들을 둘러 보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젊은층 취향 저격 업소 밀집 경주 최고 핫플레이스로

경주 황리단길은 황남동 포석로 일대 대릉원 후문이 있는 내남네거리에서 황남초등학교네거리까지 남북 방향으로 나 있는 포석로 700여m 구간과 대릉원 돌담길 주변 골목길까지를 말한다. 서울 경리단길을 차용해 생겨난, 전국의 수많은 ‘~리단길’ 중 하나다.

포석로 주변 골목까지 200여개 업소가 성업 중이다. 낡았지만 경주에서 가장 흔한 기와지붕 건물에 카페와 수제맥주집, 퓨전 한옥 레스토랑, 사진관, 교복·한복·양장 대여점, 빵집, 펜션, 게스트하우스 등이 들어서 있다. 첨성대를 장식한 아이스크림, 한옥 지붕을 내려다보며 차 한잔과 맥주를 걸치며 명상에 잠길 수 있는 루프탑 카페도 이곳만의 매력이다.

무엇보다 차 없는 ‘뚜벅이’들도 편히 갈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몇백m만 가면 경주시외버스 및 고속버스터미널이 있다. 조금만 걸으면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과 첨성대 계림 월성 동궁과월지 등이 있는 동부사적지대와 최근 복원한 월정교 등 역사문화유적이 널려 있다. 특히 동부사적지 일대는 이른 봄부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유채꽃 벚꽃 꽃양귀비 연꽃 수레국화 핑크뮬리 등이 만발하는, 사진 찍기 명소로 유명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고 젊은이들만 찾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요즘은 황리단길이 궁금한 기성세대의 발걸음도 잦다. 휴일에는 인근 황남초등학교가 주간에 한해 운동장을 무료주차장으로 개방하는 것도 한몫했다.

경주 황리단길을 찾은 관광객들이 인근에 위치한 카페와 골목길을 구경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경주 황리단길을 찾은 관광객들이 인근에 위치한 카페와 골목길을 구경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황리단길을 찾은 시민들이 길 곳곳에 있는 가게들을 둘러 보면서 산책을 하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황리단길을 찾은 시민들이 길 곳곳에 있는 가게들을 둘러 보면서 산책을 하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경주 황리단길 한 옥상 카페를 찾은 시민들이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경주 황리단길 한 옥상 카페를 찾은 시민들이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경주 황리단길 일부 가게 맛집에는 오랜 시간 웨이팅을 거쳐야 맛볼 수 있는 음식점들이 많이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경주 황리단길 일부 가게 맛집에는 오랜 시간 웨이팅을 거쳐야 맛볼 수 있는 음식점들이 많이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수년 전 이곳은 지금과 딴판이었다. 세탁소나 선술집, 원동기수리점, 철학관 같은 한물간 업소와 집창촌도 있는 경주에서 가장 낙후한 곳이었다. 경주시민들도 외면하던 곳이었다.

‘발전’과 거리가 멀어 보이던 황리단길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지역발전을 가로막던 문화재와 청년 창업주들의 노력이 오늘의 황리단길을 만들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김성일 경주고도지구 주민자치협의회 사무국장이 황리단길이 활성화되기까지의 과정과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김성일 경주고도지구 주민자치협의회 사무국장이 황리단길이 활성화되기까지의 과정과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청년 창업 붐 타고 ‘젊은 가게’ 러시

경주시가 2015년부터 낡은 건물을 한옥으로 고치거나 신ㆍ개축할 경우 1억원까지 지원하는 고도 이미지 찾기 사업도 큰 역할을 했다. 노후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생긴 가게에 청년창업 붐을 타고 하나 둘 모여들었다. 자본력이 약한 청년들이 임대료가 싼 곳을 찾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무엇보다 상인들의 자구 노력이 결정적이었다. 빵집을 운영하는 김성일(55) 경주고도지구 주민자치협의회 사무국장은 “상권 활성화를 위해 2016년 말부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며 “예전엔 ‘경주’ 하면 첨성대 안압지(동궁과 월지) 천마총 같은 유적을 떠올렸지만 이젠 황리단길이 먼저일 정도”라고 말했다.

경주 황리단길 한 골목에 'Welcome to 황리단길'이라는 벽화 문구가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경주 황리단길 한 골목에 'Welcome to 황리단길'이라는 벽화 문구가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밤이 찾아온 경주 황리단길에 한복 차림을 한 아이가 한옥 카페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밤이 찾아온 경주 황리단길에 한복 차림을 한 아이가 한옥 카페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지난해 봄 ‘카페 르초이’를 개업한 김지안(55)ㆍ최유라(27)씨 모녀도 그런 케이스다. 경주 출신인 최씨는 “서울 유명 호텔에서 플로리스트로 일하다 황리단길의 가능성을 본 어머니의 권유로 창업했다”며 “걸어서 10~25분이면 주변 유명 관광지도 다 둘러볼 수 있고 황리단길 특유의 멋 때문에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주 황리단길에서 모녀가 함께 카페 '르초이'를 운영하고 있는 김지안(왼쪽)씨와 최유라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경주 황리단길에서 모녀가 함께 카페 '르초이'를 운영하고 있는 김지안(왼쪽)씨와 최유라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경주 황리단길 카페 르초이에서 10개월 된 프렌치 불독 '탄'이가 손님들을 맞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경주 황리단길 카페 르초이에서 10개월 된 프렌치 불독 '탄'이가 손님들을 맞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경주 5.8지진이 이름 알리기에 기여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다 2016년 9월 경주 5.8지진도 상권 활성화에 기여했다. 김성일 사무국장은 “강진으로 전국의 이목이 경주로 쏠리면서 황리단길도 같이 알려졌다”며 “지진피해지역 재건운동이 펼쳐지면서 황리단길이라는 이름도 순식간에 알려졌고, 전국구 명소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 사이 가게 수는 폭증, 200여곳으로 늘었다.

황리단길이라는 명칭에 대한 찬반 논란도 많았다. 황남동이라는 동명을 두고 왜 ‘정체불명’의 가로명을 쓰냐는 주장이었다. 김 국장은 “민원이 있으니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을 쓰지 말라는 요청도 있었고, 유명 포털사이트에는 직접 관련 검색어를 삭제해 달라는 요구도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황리단길이 워낙 유명해지다 보니 대세를 거스를 순 없었다. 오히려 억지로 되돌리는 일은 낙후지역 대명사 찾기나 마찬가지라는 반론이 우세했다. 정식 가로 명칭인 ‘포석로’를 두고 황리단길로 통하는 이유다.

경주시, 안내책자 발간ㆍ교통난 해소 지원

지자체도 황리단길 활성화에 발벗고 나섰다. 황남동주민센터는 지난달 2,700만원을 들여 황리단길 가게 위치와 주변 관광지 정보를 담은 안내 책자 1만7,000부를 제작해 인근 관공서와 관광안내소, 가게 등에 무료로 비치, 배부하고 있다. 또 경주시는 지난 2월부터 경주시 고도 이미지 찾기 2차 사업을 통해 건물이나 담장을 전통 양식으로 지으면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고질적인 교통난 해소를 위해 업주, 주민, 경찰과 협의 끝에 내년부터 현재 양방통행을 일방통행으로 운영키로 했다.

경주 황리단길 가게 위치도. 황남동행정복지센터 제공
경주 황리단길 가게 위치도. 황남동행정복지센터 제공
경주 황리단길 인근 관광지 및 위치도. 황남동행정복지센터 제공
경주 황리단길 인근 관광지 및 위치도. 황남동행정복지센터 제공

황리단길에도 폭등하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짐을 싸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3년 전쯤 30만~40만원 하던 월평균 임대료가 지금은 비싼 곳은 400만원으로 폭등했다. 인근 한 부동산 관계자는 “과거 3.3㎡에 200만~300만원 하던 땅이 지금은 2,000만원 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경주 황리단길은 저녁 시간에도 차량들과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경주 황리단길은 저녁 시간에도 차량들과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교통난과 쓰레기 무단투기 등도 숙제다. 황남동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주말이 지나면 넘쳐나는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센터 일반직원까지 환경정비에 나서야 할 정도”라며 “황리단길이 더욱 활성화되고 사랑받기 위해서는 관광객들의 성숙한 시민의식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일 사무국장은 “황리단길이 이렇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는 지역 상인과 불편을 감수한 주민들의 희생과 노력이 담겨 있다”며 “어렵게 활성화된 이 황리단길이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싶은 거리가 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늘에서 바라본 경북 경주시 황남동 황리단길 야경. 야간이면 황리단길을 중심으로 골목골목 사이에도 다양한 가게들이 저마다의 감성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하늘에서 바라본 경북 경주시 황남동 황리단길 야경. 야간이면 황리단길을 중심으로 골목골목 사이에도 다양한 가게들이 저마다의 감성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재현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경주=김성웅 기자 ksw@hankookilbo.com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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