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무역센터 9ㆍ11 테러가 발발한 지 한 달 뒤, 미국과 영국 폭격기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폭탄을 퍼붓기 시작한 바로 다음 날인 2001년 10월 8일 오전, 이탈리아 밀라노 리나테(Linate) 국제공항 주 활주로를 이륙하던 스칸디나비아항공(SAS) MD-87 여객기가 소형 상용기 세스나 사이테이션(CJ2)과 충돌했다. MD-87 승객 및 승무원 110명과 세스나의 4명 전원이 즉사했고, 지상 공항요원 4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을 입었다. 안개가 짙어 시계(視界)가 200m에 불과한 날이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항공안전국(ANSU)은 2004년 1월 최종 사고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테러가 아니라 인재, 즉 늘 되풀이되는 원인인 ‘총체적 부주의와 규정 및 안전수칙 미준수’가 빚은 참사였다.
세스나기 기장과 부기장이 활주로를 향해 잘못된 유도로를 선택한 게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공항 서쪽 계류장에서 나와 북쪽 유도로(R5)를 통해 활주로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들은 활주로를 가로지르는 남쪽 유도로(R6)로 세스나를 몰았다. 안개 때문이었고, 부주의 때문이었고, 공항 관제탑을 지나치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고 당일 관제탑 지상레이더는 시스템 교체작업 때문에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안개도 짙었지만 유도로 표시등도 규정 조도보다 흐렸다. 공항 차량과 동물로 인한 오작동이 잦아 관제소 측이 활주로 모션 센서마저 꺼 두는 바람에 유도로 자동 차단기도 작동하지 않았다. 세스나기의 기장과 부기장 모두 베테랑이었고, 특히 부기장은 비행시간 1만시간이 넘는 64세의 노장이었다.
덴마크 코펜하겐행 686편 MD-87은 관제사의 이륙 신호를 성실히 이행했다. 오전 8시9분28초에 가속 밸브를 당기기 시작해 정확히 58초 뒤, 시속 280km 속도로 활주로를 막 이륙했다. 시야에 세스나기가 들어왔을 땐 MD-87로선 기체 고도를 최대한 높이는 방법 외엔 충돌을 면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충돌 직후 MD-87 오른쪽 엔진이 화염에 휩싸였다. 37세 동갑 기장과 부기장도 베테랑이었다. 그들은 역추진 엔진(브레이크)으로 기체의 속도를 줄이고 고도를 다시 낮춰 비상 착륙을 시도했다. 하지만 충돌 시 발생한 파편에 왼쪽 엔진마저 멎었다. 고도 12m까지 떴던 기체는 시속 252km 속도로 공항 북쪽 화물 격납고와 충돌했다. 이 과정이 모두 눈 깜짝할 사이에 빚어졌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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