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공개 소환 ‘플래시 세례’로 피의자 기 누르고 범죄자 ‘낙인’ 효과
20년 전 ‘옷로비’ 사건 땐 당시 김태정 법무장관 부인 소환 숨기려 ‘007 작전’
검찰의 공개소환 전면 폐지 결정은 피의자 인권 보호 측면에선 환영할 일이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국민들이 수사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포토라인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피의자나 참고인 등을 공개 소환하지 않겠다는 것은 곧 포토라인 앞에 세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포토라인은 1994년 과도한 취재 경쟁으로 인한 불상사를 막기 위해 취재진 스스로 만든 질서 유지 장치지만 거물급 인물에 대한 소환 정보 공유 등 검찰의 협조가 있었기에 유지돼 올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국민의 알 권리가 일정 부분 충족되고, 포토라인 앞에 선 피의자에게도 대국민 해명의 기회가 제공돼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간 검찰의 수사 행태를 되짚어보면 수사 기법상 또는 정치적 판단에 의해 포토라인을 악용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조사에 앞서 미리 피의자의 ‘기’를 누를 필요가 있을 경우엔 소환 일정을 언론에 공개해 ‘플레시 세례’를 받게 한 반면 정권의 실세 또는 유력 기업인, 정치인들을 조사할 땐 철저하게 포토라인을 따돌리기도 했다.
검찰의 비공개 방침으로 인해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당한 예로 1999년 ‘옷 로비’ 사건 수사를 들 수 있다. 당시 검찰은 김태정 법무부장관 부인 연정희씨의 출두 모습을 숨기기 위해 치밀하게 움직였다. 한밤중 시내 모처로 나온 연씨를 관용차에 태워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지하주차장으로 몰래 소환한 데 이어, 조사가 끝나자 여직원을 태운 승용차를 먼저 내보내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의 주의를 끈 뒤 후문으로 몰래 빠져나가도록 했다. 이번 조국 법무부장관 부인 정경심씨에 대한 비공개 소환 과정과 흡사하다.
포토라인은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를 범죄자로 낙인찍는 반 인권적 요소가 충돌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출두를 계기로 올바른 포토라인 운영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어져 왔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은 이유다. 지난 1월 대검찰청은 대한변호사협회와 법조언론인클럽이 공동 주최한 ‘포토라인,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를 후원했고, 3월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이 사회 각계와의 꾸준한 소통을 통한 대안 마련을 지시하기도 했다. 검찰 포토라인 폐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검찰미래위원회도 4월 열렸지만 결론은커녕 권고안조차 내지 못했다.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한 해법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공개소환 폐지가 독단적으로 결정된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재경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공개소환 폐지는) 선진화한 검찰 문화를 만들어가는 방향으로는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검찰이 덜컥 발표할 게 아니라 공개소환이 어떤 폐해가 있는지 등에 대해 설명하고 여론을 수렴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국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국민의 알 권리는 중요한 사회 문제에 대해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한데, 공인에 대한 공개소환까지 폐지할 경우 보완대책 마련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동희 한국사진기자협회장은 “검찰이 앞으로 소환 일정을 공개하지 않더라도 취재 현장에서 기자들이 자체적으로 포토라인을 만들고 유지하는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서강 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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