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북미가 협상 테이블에 다시 마주앉았다. 2월 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문 없이 깨진 지 7개월여 만이다. 직전 북한이 쏴 올린 미국 본토 공격 용도 전략무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일단 용인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드러난 양측의 비핵화ㆍ보상 방법론 간 간극은 여전하다. 현 신뢰 수준에 걸맞고 가치가 엇비슷한 교환부터 하는 게 마땅하다는 북한의 계산법을 과감한 초기 비핵화 조치로 먼저 믿게 해줘야 원하는 보상도 따른다는 미국이 수용할지 미지수다.
북미는 4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이튿날 예정된 실무협상 전 예비 접촉을 가졌다. 이번 만남에서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 합의한 새로운 관계 수립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완전한 비핵화 등의 이행 방안을 논의할 예정인 가운데 이날 기본 입장을 교환하고 구체적인 협상 일정과 방식 등을 미리 조율했을 것으로 보인다.
양측 협상팀 수석대표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대신 차석대표 격인 권정근 전 북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과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가 나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날 권 전 국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포함한 6명이 오전 9시 40분쯤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에서 나와 검정색 승합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이 포착됐다. 북한 협상팀을 이끌고 있는 김 대사의 모습은 이 자리에서 보이지 않았다.
5일 실무협상이 열릴지는 이날 양측이 내놓은 기본 입장에 달렸다. 입장이 크게 엇갈렸을 경우 협상 무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모두 가시적 경제 실적(김 위원장)이나 탄핵 위기 모면(트럼프 대통령) 등 국내 정치적 이유로 성과가 절실한 처지여서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오히려 5일 하루로 잡힌 협상 기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번 실무협상은 한반도 비핵화의 분수령이다. 성과가 도출된다면 연내 세 번째 북미 정상회담 추진 작업이 탄력을 받게 된다. 반면 성과 없이 끝날 경우 지난해 겨우 열린 대화 국면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성패의 관건은 하노이 회담 당시 노출된 이견의 폭을 양측이 얼마나 좁힐 수 있느냐다. 북한이 누차 요구해온 ‘새로운 계산법’은 북미가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으며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지난달 20일 김명길 대사 담화)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단계마다 북미가 맞바꾸는 비핵화와 상응 조치가 등가(等價)여야 한다는 논리에 기반해 하노이에서 북한이 영변 핵 시설 폐기와 주요 유엔 대북 제재의 교환을 첫 단계 합의로 제안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의 방법론은 ‘포괄 합의, 병렬 이행’으로 요약된다. 범위와 로드맵이 포함된 비핵화 합의와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관계 정상화), 종전(終戰)선언(평화 구축) 등 반대급부 합의를 한꺼번에 도출한 뒤 이를 동시에 이행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북한이 바라는 교환 대상의 등가성이 반드시 충족돼야 하는 게 아닌 데다, 비핵화 범위와 로드맵이 설정되려면 신뢰 부족을 이유로 북한이 질색하는 보유 핵 목록 신고가 필수적이다.
유력한 절충안은 최종 상태 등 비핵화 목표가 제시된 포괄적 합의의 문을 열어 놓되 일단 초기 비핵화ㆍ보상 조치 간 균형을 맞춰 합의가 진전될 여지를 남기는 방안이다.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완전한 비핵화가 목표인 포괄적 잠정 합의 하에 핵동결(핵 시설 가동 및 핵 물질 생산 중단)이 입구인 합의 이행 프로세스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초기 보상 조치로는 ‘스냅백’(약속 위반 시 원상 복구)이 조건인 일부 제재 유예가 거론된다.
청와대가 기대하는 결과도 이런 초기 비핵화ㆍ보상 교환 위주의 ‘조기 수확’이라는 게 소식통들 전언이다. 청와대는 이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개최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위원들이 북미 실무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한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지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구축을 위한 또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고 밝혔다.
스톡홀름=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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