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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의 하루

입력
2019.10.05 04: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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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진행된 9차 명도집행에서 한 상인이 수조위에 누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진행된 9차 명도집행에서 한 상인이 수조위에 누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9월 28일 토요일 아침,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이 더는 출근할 수 없게 된 일터 앞에 작은 돗자리를 깔고 모여 앉았다. 수협의 수산시장 이전 결정에도 꿋꿋이 남아 영업을 하던 수십 명은 그날 새벽까지 이어진 강제 철거에 의해 거리로 내쫓겼다. “신시장 건물을 다 짓고 나서야 우리에게 보여주었는데, 운반 통로도 한정된 비좁은 공간에 수족관 하나 놓고 장사를 하라는 거예요. 수산물 도매시장 구조가 아니었어요. 자기들 마트의 점원이 되라는 건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결과는 짐작할 만하게도, 수협과 건설회사 직원 수백 명이 구 수산시장을 부수고 출입을 봉쇄하는 과정에서, 상인 네 명이 크게 다쳐 응급실에 실려 갔다. 나머지 상인들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손바닥만 한 피멍이 든 팔다리와 부러진 손가락을 내보였다. 대개 예순 살이 넘은 그들은 구 수산시장에서 길게는 사십 년을 지내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제의 철거만큼 지난 일 년 동안 계속된 명도 집행도 잔인했다고 말했다. 상인들이 쪽파(저쪽파)와 대파(반대파)로 나뉘어 서로 미워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늦더위가 찾아온 그날 낮기온은 영상 29도였다. 상인들은 그늘도 없는 땡볕 아래서 빵과 주먹밥을 나누어 소박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이제 들어갈 수 없게 된 수산시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오후 한 시 무렵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하지만 어디로 가는지 알려줄 수는 없어요. 전에도 우리가 어디를 갈 때마다 저쪽에서 귀신같이 알아채고 따라왔거든요.” 나는 동료 기록사진가 한 명과 함께 무작정 그 길을 따라나섰다.

중계역에 내린 상인은 모두 쉰여덟 명으로, 여섯 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여성이었다. “영감들은 우리처럼 열두 시간씩 진득하게 앉아 있지를 못하잖아요.” 여성만 남은 까닭을 그들은 간단한 말로 설명했다. “우리 집 양반도 집안일 하라고 했어. 싸움은 내가 한다고. 여기 나오면 서럽다고 술만 마시니까 보기가 안 좋아.” 상인들은 경전철 기공식이 열리는 하계동 공영주차장까지 1.4km 거리를 40분 동안 걸었다. 걸음이 느린 할머니들을 위해 중간에 다섯 차례를 쉬었다.

기공식 행사장 앞에 다다르자 총무는 말했다. “여러분, 시장님을 만나도 절대 흥분하지 마시고 침착하게 우리 이야기를 합시다. 절대 소리 지르지 말고 욕하기 없기. 아시겠죠?” 어제부터 잠을 두 시간밖에 청하지 못했다는 상인들은 수산시장 조끼를 꺼내어 입고 행사장 입구에 줄지어 섰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서울시가 개설한 시민들의 공공재다, 서울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시청이 중재에 나서줄 것이라는 믿음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

3시 20분경, 서울시장을 태운 관용차가 행사장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너무 순식간이었기에 상인들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씨 성을 가진 국회의원이 “경전철이 완공되면 마장동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습니다, 함께 마장동 시장에서 소주 한 잔씩 합시다”하고 연설을 하는 동안, 존폐 위기의 노량진 시장 상인들은 급히 의견을 나누었다. 그대로 입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남의 행사에 끼어들면 쪽팔리잖아, 우리도 품위가 있지.” 건어물을 팔던 상인의 말이었다.

그러나 행사가 끝난 후 관용차는 반대쪽 출구로 향했다. 상인 한 명이 뛰어가며 외쳤다. “시장님, 저희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외침은 경호원들에게 간단히 제지당했다. 허탈함이 지난 며칠간 억눌렀던 감정들과 함께 터져 나왔다. 대책위원장이 상인들을 부둥켜안고 말했다. “우리를 보았을 테니 전달은 되었을 겁니다. 실망하지 말고 오늘은 돌아갑시다.” 상인들은 순식간에 진정되어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계속 버티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해파리를 팔아 왔다는 상인은 말했다. “내 자존심 때문이야.”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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