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멧돼지 변수 과소평가해 안이한 방역… 돼지열병 토착화 우려
파주ㆍ김포서 이틀간 4건 확진, 파주ㆍ김포 돼지 전량처분 특단 대책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를 보유한 멧돼지가 비무장지대(DMZ) 남측에서 발견됐다. 이로써 지난달부터 경기 북부와 인천 강화군을 휩쓸고 있는 돼지열병이 기존 발병국인 북한에서 멧돼지를 통해 넘어온 것 아니냐는 추정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경기 북부에선 발병 농장이 이틀 사이 4곳이나 추가됐다.
3일 환경부에 따르면 전날 경기 연천군 비무장지대(DMZ)에서 발견된 야생 멧돼지 폐사체의 혈액을 정밀검사한 결과, 돼지열병 바이러스 ‘양성’ 반응이 나왔다. 국내 혹은 DMZ 내 야생 멧돼지에서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는 올해 DMZ 내에서 죽은 야생 멧돼지 4마리를 발견, 시료 채취가 가능한 2마리에 대해 정밀검사를 실시했지만 모두 ‘음성’ 판정이 내려졌다. 환경부 역시 올해 총 멧돼지 806마리를 검사했는데, 이번 멧돼지를 제외한 805마리에선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
이번 돼지열병 멧돼지가 발견된 곳은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600m, 남방한계선으로부터 전방으로 1.4㎞ 떨어져 있는 DMZ 내 남측 지점이다. DMZ 내부 역시 북한과 마찬가지로 돼지열병 바이러스가 이미 퍼져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북측 북방한계선에 설치된 철책은 우리처럼 견고하지 않아 북측으로부터 DMZ 내로 야생동물 이동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DMZ에서 남쪽 철책을 넘어올 가능성에 대해선 “우리 측 철책은 과학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어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 측 설명과 달리 DMZ에서 야생 멧돼지가 남측 철책을 넘어올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날 국방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지난해부터 올해 9월까지 9개 사단 13개소에서 GOP(일반전초) 철책이 파손됐고, 현재 보강공사가 진행 중인 곳만 5건”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DMZ 철책 중 약 260m가량이 파손됐고, 산사태를 막아주는 옹벽까지 무너져 내렸다”면서 “(국내에서) 방사한 토종 여우가 휴전선 철책을 넘어 개성까지 이동한 사례가 있다”고 했다. 북한 야생동물이 남측 철책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는 얘기다.
수로를 통한 월경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천시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오전 바다를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 멧돼지 3마리가 강화군 교동면 교동부대 내 철책선 북측에서 포착됐다. 이 멧돼지들은 이곳에서 14시간 넘게 머물다 다시 잠수를 해 자취를 감췄다. 군당국과 인천시는 멧돼지들이 철책선을 넘어 남쪽으로 건너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멧돼지가 해안을 따라 헤엄친다면 충분히 월경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멧돼지가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을 정부가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식품부는 발생 초기 국방부의 말을 빌어 “올해 남한으로 넘어온 북한 멧돼지는 전혀 없다”고 했고, 정경두 국방부 장관 역시 전날 국정감사에서 같은 입장을 되풀이했다. 환경부도 지난달 17일 경기 파주시 연다산동에서 국내 최초로 확진 판정이 나오자 “멧돼지 서식이 어려운 환경”이라며 “야생 멧돼지 전염에 의한 발병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멧돼지가 국내에서 바이러스 매개체 역할을 할 경우 돼지열병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야생 멧돼지는 개체수가 워낙 많고 인위적인 이동통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전국에 있는 멧돼지는 약 30만마리로, 산림지역 1㎢당 마리수를 뜻하는 서식밀도는 지난해 기준 5.2마리였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멧돼지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해당 지역에서 돼지열병이 토착화돼 지속적으로 재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강화군 하점면에서 9번째 확진 농장이 나온 뒤 닷새간 소강상태를 보이던 돼지열병은 경기 북부를 중심으로 다시 확산하고 있다. 3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전날 경기 파주시 문산읍과 김포시 통진읍 양돈농장에서 접수된 의심 신고를 정밀검사한 결과 모두 돼지열병으로 확진됐다고 밝혔다. 전날 파주시 파평면과 적성면 농장이 확진 판정을 받은 데 이어 이틀 간 4곳이나 추가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돼지열병 발생 농장은 △파주시 5곳 △김포시 2곳 △연천군 1곳 △인천 강화군 5곳 등 총 13곳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파주시와 김포시 내 모든 돼지를 없애는 초강력 대책을 내놨다. 종전처럼 발생 농장 반경 3㎞ 내 농장은 모두 예방적 살처분을 하되,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나머지 농장에 대해선 돼지 전량을 수매해 정밀검사를 실시, 이상이 없는 돼지만 도축해 출하하겠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보다 적극적인 방역 대책을 주문한다. 김준영 대한수의사회 부회장은 “북한 내 돼지열병 전파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며 “북한에 단순히 통지문을 보내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통일부ㆍ농식품부ㆍ환경부 등이 모두 힘을 합해 북한과의 공동 방역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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