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 자사고 지정취소 법원 제동… 재지정 14개 학교 5년 지위 유지
사회 갈등 불구 실질적 변화 없어… 단계적 전환 사실상 불가능 판단
대통령 고교서열화 해결 주문까지“시행은 5년 뒤, 다음 정부의 몫”
교육부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특목고의 일괄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평가를 통한 단계적 전환을 고수하던 교육부가 입장을 급선회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딸 논란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이 고교서열화 해결을 주문한데다, 최근 법원이 자사고 측이 제기한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단계적 전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자사고, 특목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고교체제 개편 3단계 로드맵(동시선발-평가에 의한 단계적 전환-대국민 의견수렴)에 따른 단계적 폐지를 고수하던 입장에서 처음으로 기류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그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을 중심으로 한 일부 교육계 인사들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자사고와 같은 학교 유형을 삭제해 일반고로 일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교육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내놨다.
기류 변화는 법원이 지난 8월 말, 재지정 평가 결과 지정취소 된 전국 10개 자사고 측이 각 시도교육감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잇따라 인용하면서 감지됐다. 이 결정으로 이들 학교가 올해 고교 입시에서도 여전히 자사고 지위를 유지한 채 학생을 뽑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본안 소송이 최소 3, 4년간 진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현 정부 임기 내 계속 자사고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상반기 내내 자사고 평가에 투입된 행정력, 자사고 문제가 유발한 사회적 갈등을 고려하면, 허무하다 싶을 만큼 바뀐 건 없는 셈이다.
여기에 조 장관 딸이 고교 시절 대학 연구소에서 인턴을 하고 논문의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는데 기여한 장영표 단국대 교수가 같은 한영외고 유학반 학생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회의 접근성 측면에서도 특목고를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조 장관 임명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에서 “고교 서열화와 대학입시의 공정성 등 기회의 공정성을 해치는 제도를 다시 한번 살피겠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다만 교육부가 자사고, 특목고 일괄 폐지로 정책 방향을 확정하더라도 실제 시행 시기는 다음 정부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올해 재지정 평가를 통과한 상산고 등 자사고 14곳에 대해서는 앞으로 5년간 자사고라는 법적 지위를 보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5년간의 유예 기간을 두고, 이에 맞춰 2025년에 일괄 전환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입제도처럼 논의는 지금 하되, 시행일을 5년 뒤로 하는 방안이 있다”며 “(일괄 폐지론이)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2일 국회 교육위원회의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고교체제는 교육 제도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으로 국가 정책으로 일괄적으로 정해야 한다”며 “5년의 유예 기간을 두고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면 재학생과 입학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예측하지 못한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호성 전주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교육 문제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조금씩, 부분적으로 개혁하기가 아주 어렵고 속도도 느릴 수밖에 없다”며 “갈등과 반목이 있다고 하더라도 옳은 방향이라고 한다면 일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