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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에 추락한 비행기의 유일 생존자, 그녀는 왜 밀림으로 돌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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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에 추락한 비행기의 유일 생존자, 그녀는 왜 밀림으로 돌아갔을까

입력
2019.10.04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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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네 쾨프케의 이야기는 독일의 영화 거장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사고 후 28년 뒤인 1999년 다큐멘터리 ‘희망의 날개’에 담았다. 사진은 다큐멘터리의 포스터.
율리아네 쾨프케의 이야기는 독일의 영화 거장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사고 후 28년 뒤인 1999년 다큐멘터리 ‘희망의 날개’에 담았다. 사진은 다큐멘터리의 포스터.

1971년 12월 24일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푸카이파로 가던 랜사 항공의 소형 비행기가 폭풍우 속으로 사라졌다. 탑승객 92명 중 단 한 명만 살았다. 열일곱 살 독일 소녀 율리아네 쾨프케는 3,000m 상공에서 페루의 밀림으로 떨어졌다가 홀로 살아남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책은 이 기적의 소녀가 썼다.

부모가 동식물학자인 쾨프케는 페루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페루의 밀림을 누볐다. 책에는 그가 어렸을 때 밀림에서 경험한 자연의 신비에 관한 얘기들이 가득 담겼다. 크리스마스를 독일에서 보내기 위해 엄마와 둘이 비행기를 탔다가 당한 사고에서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어렸을 적 그러한 경험 덕분이었다. 밀림 한복판에 떨어진 그는 11일만에 삼림노동자들에게 발견됐다.

책은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사고 후 눈을 떴을 때 첫 장면을 그는 ‘밀림의 거대한 나무 꼭대기에 금색 빛이 맺히자 모든 것이 다양한 녹색 톤으로 눈부시게 반짝였다’고 기억한다. 목이 타 들어가는 갈증은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을 핥으며 해결했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비가 올 때면 빽빽한 덤불 밑에서 커다란 이파리를 모아 몸을 감싸고 옹송그렸다. 인간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밀림이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접해왔던 터라 공포심보다는 안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물소리를 찾고 개울을 따라 강으로 가면 마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익히 배웠던 밀림에서의 생존 비법이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녹색 지옥’에서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었냐고 묻지만, 정작 그는 그에게 밀림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녹색 지옥이었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사고 이후 동물학자가 되어 다시 페루의 밀림을 찾은 율리아네 쾨프케.
사고 이후 동물학자가 되어 다시 페루의 밀림을 찾은 율리아네 쾨프케.

생존 과정에 대한 묘사에만 치우쳤다면 책은 그를 다뤘던 수많은 영화나 기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책은 그가 살아남아서 어떤 삶을 살고, 사고가 그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담담하게 풀어낸다. 11일만에 구출된 그는 페루를 떠나 독일로 이주했고, 대학에 진학해 동물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다시 페루로 돌아온다. 밀림으로 들어가 박쥐와 나비를 연구하고, 어렸을 적 그의 부모가 세웠던 오두막 연구소 일대를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면서 밀림을 지켜낸다. 사고 이후 그는 많은 이들로부터 ‘어떻게 다시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됐어요’ ‘사고를 당해 밀림에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아왔다. 그는 “비록 힘든 사고를 겪었지만, 아주 평범한 사람인 내가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말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단호하게 답한다. 단지 그가 밀림에서 깨달은 바를 조용히 실천할 뿐이다. “밀림에 홀로 살아남았을 때 인류와 자연에 크게 공헌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율리아네 쾨프케 지음ㆍ김효정 옮김

흐름출판 발행ㆍ336쪽ㆍ1만5,000원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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