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 날엔 멀리서 개 짖는 소리도 들려

눈이 소리를 빨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책에 나와

-그렇구나

나는 눈이 우리 동네를 하얗게 청소해서 그런 줄 알았어

-빨래가 마를 때 나는 냄새 맡아 봤니?

그건 곰팡이가 햇볕에 타는 냄새라고 책에 나와

-그렇구나

나는 해님이 빨래를 빵처럼 굽는 냄샌 줄 알았어

책에 나오는 말만 하는 아이와

책에 나오지 않는 말만 하는 아이가

쉬지 않고 이야기하며 걷는다

어깨동무하고 걷는다

- 서금복, ‘파일찾기’(청동거울, 2018)

책에 나오는 말만 하는 아이와 책에 나오지 않는 말만 하는 아이,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언어를 지녔다. 언어가 다르다는 건 인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존재가 다르고 존재가 바라보는 세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아이는 쉬지 않고 이야기한다. 언어가, 인식이, 존재가, 세계가 다르다 해서 등 돌리거나 싸우지 않는다. 정답게 어깨동무까지 하며 이야기한다. 이야기하며 걸어 나간다.

문학은 두 아이 중 ‘책에 나오지 않는 말만 하는 아이’와 비슷해 보인다. 눈 오는 날 멀리서 하얗게 찾아오는 소리를 듣고, 빨래에서 바삭바삭 피어나는 빵 굽는 냄새를 맡는다. ‘책에 나오는 말’을 ‘과학적 사실’로, ‘책에 나오지 않는 말’을 ‘문학적 진실’로 딱 잘라 나누며 은근히 ‘문학적 진실’이 우세하다고 여겨온 듯하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둘 중 하나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렇구나, 라고 수긍하며 너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할 뿐.

‘과학적 사실’과 ‘문학적 진실’은 그리 쉽게 이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요즘 법무부 장관 임명과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온 국민이 저마다 강한 목소리로 상대편을 비방하는 형국을 볼 때 더 그런 생각이 든다. 핵심적이거나 혹은 부수적인 여러 사항을 두고 양쪽이 팩트로 규정하는 바가 다르며, 동일한 팩트에 대해서도 해석이 다르다. 원래 인간의 뇌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 들어맞지 않은 정보는 걸러내고, 들어맞는 정보만 받아들여 편견을 계속 강화하는 ‘확증 편향’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동일한 팩트를 두고 이렇게나 상반된 해석을 할 수 있는지, 시민으로 공유하는 합리와 윤리가 우리에게 과연 있기는 한지, 인간은 정말 ‘호모 사피엔스’인지까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쾅!’/바람이 미는 대로 그네를 타던 방문이/큰 소리를 내며 닫히고 말았습니다//방에서 혼자 놀던 아이/깜짝 놀라 와락 문고리에 매달립니다//있는 힘을 다해 잡아당겨도/열리지 않는 문//아이가 그만 울음을 터뜨립니다//고리에 매달리지만 말고/밖을 향해 살짝 돌려야 한다는 걸/아이는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문 열기’ 전문)

아이는 모른다. 어른은 아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어른인 나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알까. 혹시 나도 문고리에 매달린 채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울고 있던 적은 없나. 내가 모를 수 있고 틀릴 수 있다는 걸 아는 일. 그걸 알기에 늘 회의하고 반성하는 일. 그게 ‘생각하는 인간’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 어깨동무하며 걸어갈 수 있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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