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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고액상습 체납자가 명단공개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입력
2019.10.04 07: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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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납액 30%만 내면 비공개 전환, 지난해 159명 허점 악용 

 “비공개 기준 50%로 상향, 잔액상한 10억원으로 개정을” 

 

한재연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이 5월 30일 고액 체납자들의 재산 은닉 사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국세청 제공
한재연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이 5월 30일 고액 체납자들의 재산 은닉 사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국세청 제공

#지난해 고액체납자인 A씨가 내야 할 세금은 148억원이었다. 국세청이 세금 납부를 유인하기 위해 지정한 ‘명단공개 대상자’였다. A씨는 국세청으로부터 ‘명단공개 대상자가 된다’는 안내를 받고서야 체납액의 31%인 47억원만 납부했다. 아직 내야 할 세금이 101억원이나 남아 있었지만, A씨는 돌연 인적사항 공개 대상자에서 제외됐다. 체납액의 30%만 납부하면 누구든 비공개 대상자로 바뀌는 현행법 때문이다.

A씨처럼 현행법의 허점이 작용해 고액상습체납자들의 체납액 상당 부분이 환수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금 완납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고액상습체납자 명단공개제도’가 오히려 적은 액수만 내고도 버틸 수 있는 통로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일 국세청으로부터 ‘2018년 고액상습체납자 명단공개 대상 현황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체납액의 30% 이상 납부해 명단공개에서 제외된 사람은 159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총 체납액은 3,052억원이었고, 납부액은 43.7%인 1,333억원이었다. 1,719억원은 아직 거둬들이지 못했다.

현행법상 체납 발생일로부터 1년 뒤 2억원 이상 체납한 사람의 명단이 공개된다. 그러나 체납액의 30% 이상을 납부하면 해당 체납자의 인적사항은 비공개로 전환된다. 사실상 명단공개제도가 고액체납자들이 세금 납부를 피하는 우회로가 되는 셈이다. 159명의 납부 비율을 보면 비율이 클 수록 인원은 감소했다. 30~35%를 납부한 인원이 56명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체납액의 50%를 납부한 인원은 전체의 10%도 안 되는 9명뿐이었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야 할 세금이 많은 체납자일수록 제도를 악용하고 있었다. ‘2018년 고액상습체납자 공개 제외 대상 체납잔액 상위 10위’ 자료를 보면, 체납액의 50%를 납부한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 체납액의 40%도 안 낸 사람은 5명이었다. 이들이 낸 평균 세금은 65억8,000만원이었는데, 평균 체납액(141억원)의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고액상습체납자 명단 공개 대상 인원은 7,158명으로, 이들의 체납액은 5조2,440억원이었다.

김정호 의원은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비공개 대상자 전환 기준을 강화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비공개 기준인 체납액의 30%를 ‘50%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고, 체납잔액 상한을 10억원으로 제한할 계획이다. 내야 할 세금이 10억원 이상 남았을 경우 납부 비율에 상관없이 명단을 공개해 납부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명단공개제도는 체납액의 완납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인데, 일부 납부만으로 명단공개를 피할 수 있는 게 현실”이라며 “성실납세하는 국민이 상실감을 갖지 않게 신속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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