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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비틀거리는 트럼프의 중동연합

입력
2019.10.07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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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단체 기념 사진 촬영 중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28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단체 기념 사진 촬영 중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은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1주년이었다. 유엔은 6월 작성한 보고서에서 이 사건은 사우디 책임이고, 실세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연루되었음을 보여주는 “믿을만한 증거”가 있다고 했다. 이 사건 이후 사우디의 국제 이미지가 악화하고 논란이 커지면서 과거의 지역 역학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난 해 사우디 정권은 이란과의 주요 분쟁지인 예멘 내전과 관련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현재까지 미 의회는 빈살만이 제시한 사우디 주도하의 예멘 개입에 거리를 두는 여러 건의 초당파적 결의안을 채택했다. 트럼프는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이런 추세로 볼 때 미 정치권이 특히 카슈끄지 사건 후 사우디 정권의 잔학 행위에 더는 인내하지 않으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사우디와의 긴밀한 동맹으로 자국의 평판이 나빠질 것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란과의 긴장 완화를 위해 대부분 군 병력을 예멘에서 철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의외로 UAE가 지원하는 예멘 남부 분리주의자들은 최근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세력으로부터 임시수도를 빼앗았다. UAE의 움직임이 급진적인 전략재정비로 이어질 것 같진 않으나 사우디 정권이 전보다 고립되고 약해진 것은 분명하다.

이 외에도 사우디는 최근 국영기업인 아람코의 정유공장 두 곳에 심각한 공격을 받았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의 후티 반군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지만, 미 정부 주요 인사들은 이란의 직접 개입을 비난했다. 이 공격으로 사우디는 석유생산량의 절반(일일 세계생산량의 5%)에 차질이 생겼고 유가는 급등했다. 사우디는 이처럼 계속 문제를 낳고 있으며 인도적 차원에서도 비극인 예멘 개입이라는 명백한 외교정책 실패를 재고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사우디에게 좋지 않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의 아람코 상장 계획이 연기되었음에도 투자자들의 신뢰는 위축되지 않았다. 빈살만은 기다렸던 기업공개를 위해 아람코와 에너지부 간에 긴밀한 파트너십을 구축했고 사우디 왕실 가족(빈살만의 이복형제)이 처음으로 에너지부를 이끌게 됐다.

사우디와 트럼프의 관계도 여전히 좋다. 미국ㆍ사우디 동맹은 75년이 되었지만, 모든 미국 대통령이 한결 같이 사우디를 후대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오바마는 예멘에서 사우디 지원 연합을 지지했지만 사우디가 반대한 2015년 이란 핵협정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협정에서 탈퇴했고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빈살만의 대외정책 충동을 억제하려 하지 않았다.

이 지역에서 적어도 현재까지 트럼프와의 결탁을 최대로 활용한 또 다른 지도자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다. 최근 이스라엘 재선거 전날 트럼프는 네타냐후에게 상호방위조약을 제안하려 했다. 네타냐후는 여전히 국제법을 무시하며 요르단강 서안 일부를 합병하려는 의지를 더 확실히 보여주었다. 다만 이번엔 트럼프의 지지가 좀 약했고, 네타냐후의 막바지 전술은 완전 실패했다. 5개월 전 선거에서 의석을 잃은 리쿠드당은 정치적 미래가 불확실하다.

네타냐후의 대담한 선언을 여러 부패 혐의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돌리려는 단순 선전용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확장주의와 침략이 그의 지역 정책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은 레바논과 시리아에서 직접 또는 이란이 앞세운 단체를 사이에 두고 거듭 충돌했다. 레바논 상황은 특히 변동이 심하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지역 전체에 영향을 끼칠 승패를 알 수 없는 충돌을 감수하며 위험한 선을 넘기 시작했다.

네타냐후는 몇 년 전 미국을 이란과의 전쟁에 끌어들이겠다고 했다. 오바마는 이에 휘둘리지 않고 외교적 노력으로 핵협정을 이끌어낸 반면, 트럼프는 통제권을 바로 네타냐후에게 넘기는 실수를 했다. 네타냐후는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에 방아쇠를 당긴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이라는 또 다른 동맹을 발견했다.

그러나 볼턴은 최근 대통령과의 불화로 백악관을 떠났다. 결국 트럼프는 2020년 대통령 선거 전에 해외 분쟁에 과도하게 얽매이기 싫은 것이다. 실제 그는 이란 지도부와의 협상을 고려해왔고, 핵협정 아래서 모든 의무를 계속 준수한다는 조건으로 이란의 재정 문제를 완화하려는 마크롱 대통령의 구상을 수용하는 듯 했다.

이란과의 외교적 화해에 성공하려면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하는 것처럼 허세부리고 제멋대로인 접근 방식을 버려야 한다. 또 올해 초 이란의 자리프 외무장관을 제재했을 때 같은 모순된 정책도 중단해야 한다. 자리프는 빈살만, 네타냐후, 볼턴, 아부다비 왕세제, 무함마드 빈 자예드 등 소위 B팀의 영향 때문에 트럼프의 충동적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고 본다. 빈살만은 지금까지 카슈끄지의 폭풍을 견뎌왔지만, 네타냐후는 크게 약해졌고, 볼턴은 침몰했으며, 빈 자예드는 열외가 되고 있다. 트럼프의 반이란 중동연합이 약해지면서 이 지역에 절실했던 긍정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한다.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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