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56)가 그림을 그려가며 자신의 범행을 자백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저지른 범행은 당초 알려진 화성 사건 등 살인 15건(처제 살인 포함) 외에 강간 및 강간미수가 30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들 사건 모두 공소시효를 넘겨 처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의 범행은 군 제대 후인 1986년 1월부터 처제를 성폭행 살해 후 무기징역이 선고된 1994년 1월까지 8년 동안 이뤄졌다.
반기수 경기남부경찰청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은 2일 브리핑을 통해 “대상자(이춘재)가 9차례 경찰 접견조사를 벌이던 과정에서 ‘살인 15건, 강간 및 강간미수 30건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했다”고 밝혔다.
살인사건의 경우 모방범죄이면서 범인이 검거된 화성 8차 사건을 제외한 화성 9건과 화성사건과 유사한 5건(화성 3건, 청주 2건으로 추정), 처제 성폭행 후 살인 및 시신유기까지 모두 15건이다.
이씨는 살인 말고도 군 제대 후 처제 살인으로 구속되기 전까지 경기 화성시와 충북 청주시 등에서 30건의 강간 및 강간미수 사건도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다만 살인사건과 강간 및 강간미수 사건의 발생장소와 시기 등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이씨의 자백은 지난주부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면서 시작됐다. 경찰이 내민 건수에 대한 대답 차원이 아닌 자발적, 구체적으로 범행 사실을 털어놓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기존에 알려진 목격자 진술과 법최면 조사는 접견조사에 활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씨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물론 강간 및 강간미수 사건 일부에 대해 “장소가 이렇게 생겼다”며 그림을 그려가며 범행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 수사본부장은 “대상자와 프로파일러 간 라포르(신뢰관계)가 형성된 상황에서 이씨가 지난주부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임의로 자백하기 시작했으며 그림을 직접 그린 것도 있다”며 “경찰이 관련 사건을 제기하고 대답하는 방식이 아닌 본인 스스로 살인 14건, 강간(강간미수) 30건이라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의 자백이 오래전 기억에 의존해 일시·장소 등에 대한 편차가 있고, 일부 사건은 구체적인 내용이 아닌 경우도 있어 자백의 신빙성 확보를 위해 당시 수사기록을 바탕으로 진위 여부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진술한 사건은 곧바로 수사기록 검토에 돌입했고, 구체성이 떨어지는 사건에 대해서는 접견조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법최면 조사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이와 별개로 기존 증거물에 대한 분석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기존에 확인된 5·7·9차 DNA를 확보한 경찰은 최근 4차 증거물에서도 이씨의 DNA를 확보한 상태다. 현재 3차 사건의 증거물에 대한 DNA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상태다.
경찰은 이씨가 자백했다고 해서 곧바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거나 신상 공개 여부 등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반 수사본부장은 “이씨가 자백했지만 자백 내용의 신빙성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추후 법률 자문단의 자문 결과를 바탕으로 모든 사항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화성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돼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현재 복역 중이다.
수원=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수원=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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