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서울 노원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영구임대 단지에 홀로 거주하는 김갑철(75ㆍ가명)씨는 한밤중 극심한 복통을 느꼈다. 전화도 걸 수 없을 만큼의 고통에 신음하던 김씨의 눈에 얼마 전 LH에서 설치해준 음성인식 인공지능(AI) 스피커가 들어왔다. “살려달라”는 다급한 외침은 즉시 지자체의 ‘ICT케어센터’와 단지 내 관리소에 연결됐고, 김씨는 출동한 119에 의해 긴급 이송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김씨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며 “곁에 있는 AI 스피커가 든든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구 번동의 LH영구임대 단지. 매일 오전 8시가 되면 AI 스피커가 김철순(81ㆍ가명)씨에게 말을 건넨다. “할머니, 아침 약 드실 시간이에요.” 김씨가 집을 나서기 전 의지하는 것도 AI 스피커다. “오늘 날씨 어때”라는 질문에 스피커는 ‘우산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씨에게 AI 스피커는 가족이자 친구인 셈이다.
노인의 날(2일)을 맞아 인공지능을 통해 건강과 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세상과 소통하는 홀몸 노인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LH 임대주택만의 주거복지 인프라와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이 결합한 ‘LH형 인공지능 노인돌봄 서비스’ 덕분이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H는 지난달 30일 LH서울지역본부에서 SK텔레콤, 사회적기업 행복한에코폰과 ‘스마트 노인복지 시범사업’ 관련 협약을 체결하고 영구임대단지에 주거복지 인프라와 ICT 기술을 결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사업의 얼개는 이렇다. SK텔레콤은 회사가 개발한 음성인식 AI스피커 ‘누구(NUGU)’ 등 스마트 돌봄 장비를 LH 영구임대단지 내 홀몸 노인 가구에 설치하고 이를 활용해 대화, 음악, 날씨, 뉴스를 제공하거나, 홈 사물인터넷(IoT) 기기 연동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음성인식 조명제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LH 무지개돌봄사원’들은 '케어매니저'가 돼 홀몸 노인들이 스피커 등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안내한다. 무지개돌봄사원은 LH가 만 60세 이상을 채용한 뒤 임대주택 입주민에게 상담, 말벗, 단지관리 등 주거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대표적인 어르신 일자리 프로그램이다. 홀몸 노인들과 비슷한 연령대의 사원들이 비슷한 눈높이에서 사용법을 안내하고 말벗이 돼 ‘노노(老老) 케어 효과’가 기대된다는 게 LH 측의 설명이다.
단지 내 관리사무소는 노인들이 위급상황에서 스피커에 도움을 요청할 경우 즉시 대응하고, ICT케어센터는 사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한다.
1990년 10월 입주민을 맞은 서울 강북구 단지를 시작으로 올해 운영 30년을 맞은 영구임대단지는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가구의 30%가 65세 이상 홀몸 노인이다. 이들에 대한 돌봄 서비스 제공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고독사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LH는 민관융합을 통해 따뜻하고 똑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이번 시범사업을 기획했다. 앞서 8, 9월 일부 가구를 대상으로 가(假)운영이 진행됐다.
시범사업 대상은 서울 권역 내 LH 영구임대단지 4곳(500세대)으로, LH는 시범사업 성과 분석 후 확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백경훈 LH 주거복지본부장은 “지속적으로 민간의 첨단 ICT 기술을 접목한 따뜻한 스마트 돌봄서비스를 발굴해 어르신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돌봄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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