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라디오 한물 갔다고? ‘일상의 BGM’으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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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라디오 한물 갔다고? ‘일상의 BGM’으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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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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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영국의 2인조 뉴웨이브 밴드 버글스가 라디오의 슬픈 운명을 예견하며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외친 게 1979년. 그로부터 벌써 40년의 시간이 흘렀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또 다른 노래 가사가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 버글스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영상 시장은 분명 커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라디오, 넓게 말해 ‘오디오 콘텐츠’ 시장이 쪼그라들거나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연명을 하는 수준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멀티태스킹’(한 번에 여러 개의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일) 시대를 맞아 오디오 콘텐츠는 두 손과 두 눈을 자유롭게 해주는 ‘일상의 BGM’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디오와 영상이 상호 대체 가능한 매체라고 본 것 자체에서 버글스의 외침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라디오는 절대 죽지 않았다”고 말한다.

 ◇멀티태스킹ㆍ저렴한 비용이 강점 

시장조사업체 액티베이트가 2017년 미국 성인 직장인들이 하루 평균 동영상 보기, 오디오 듣기, 게임 하기, 업무 등 특정 행위를 하느라 쓰는 시간을 계산해 봤더니 놀랍게도 30시간 59분이 나왔다. 다시 말해 물리적인 시간 24시간을 초과하는 7시간이 존재한다는 건데, 이는 한 번에 두 가지 이상 일을 동시에 하는 시간이 7시간이나 된다는 얘기였다.

이 멀티태스킹 행위에 가장 많이 포함되는 미디어로는 ‘오디오’가 꼽혔다. ‘무언가‘를 들으면서 ‘또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얘기. 실제 팟캐스트(인터넷 기반 오디오 콘텐츠 플랫폼) 시장 국내 1위 업체인 ‘팟빵’ 이용자들을 조사한 결과 있었는데, 오직 청취 행위만 한다고 답한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당연히 나머지 83%는 다른 어떤 행위를 하면서 팟빵을 듣는다고 했다.

애당초 오디오 콘텐츠는 큰 집중력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난 Z세대의 취향과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이들은 노트북PC, 스마트폰, 태블릿PC, 게임기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게 더 어렵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노래를 들을 거면 노래만 듣고, 공부를 할 거면 공부만 하고, 게임을 할 거면 게임만 하라”는 지청구는 그저 ‘세대 차이’를 드러내는 말에 불과하다. 스타트업 마이쿤의 팟캐스트 서비스 ‘스푼라디오’의 경우 18~24세 이용자가 전체의 70%나 차지했다.

전문 장비나 작가, PD 등 인력 없이 누구나 직접 방송할 수 있는 오디오계 ‘1인 방송’의 등장은 오디오 콘텐츠 시장 규모를 키우는 촉매제가 됐다. 이은영 네이버 오디오클립 리더는 “창작자는 보여지는 것에 신경 써야 하는 영상 콘텐츠에 비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고, 소비자도 화면에 집중하는 영상 소비 방식과 달리 다른 일을 하면서도 영상 대비 적은 데이터 사용량으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넷플릭스까지 국내외 경쟁 치열 

오디오가 영상에 밀려 사라지는 미디어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는 콘텐츠라는 게 입증되자 글로벌 기업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영상 스트리밍 최강자인 넷플릭스는 미국 위성 라디오 사업자 시리우스XM과 손잡고 올 4월부터 ‘넷플릭스 이즈 어 조크(Netflix is a joke)’라는 오디오 코미디를 제공하고 있다. 영상과 오디오가 경쟁이 아닌 공생 관계라는 걸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례로 꼽힌다.

구글은 지난해 1월 출시한 ‘오디오북’을 한국을 포함한 45개국에서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 음악 스트리밍 1위 업체인 스포티파이는 올해 팟캐스트 업체 인수 자금으로 5억달러(약 6,000억원)까지 사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애플도 오디오 콘텐츠를 자체 제작해 독점 제공하기 위해 외부 제작사들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네이버는 오디오 앱 ‘오디오클립’에 이어 최근 모바일 네이버 첫 화면에서 오디오 콘텐츠를 24시간 즐길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나우’를 시작했다. 팟빵은 8월 미국 팟캐스트 제작사 ‘원더리’와 손잡고 미국 내 인기작을 한국어로 제작해 들려주고 있다. 심지어 SBS 등 국내 13개 방송사들까지 ‘듣는 TV’를 콘셉트로 하는 연합 오디오 플랫폼 ‘티팟’을 9월 말 출시했다.

 ◇장르ㆍ수익모델의 다양화 기대 

전 세계 팟캐스트 시장 규모는 2018년 7억2,400만달러(약 8,700억원)에서 2022년 18억4,800만달러(약 2조2,200억원)로 급성장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월간 팟캐스트 청취자가 7,300만명으로 12세 이상 미국인의 약 26%를 차지했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앞으로 이용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 광고 수익 등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게 업계 예상이다.

다양한 수익 모델 실험도 이어지고 있다. 아프리카TV에서 별풍선을 쏘는 것처럼 ‘후원 모델’을 도입하거나 일부 콘텐츠는 돈을 지불해야만 청취할 수 있는 ‘유료 판매 모델’도 있다. 팟빵의 경우 지난 4월 기준 유료 콘텐츠 결제 건수가 35만건으로 결제 기능을 처음 도입한 2017년 7월(4만건)보다 10배 가까이 늘었다. 유료로만 들을 수 있는 유료 채널 건수는 지난해 400여개에서 올해 1,500여개로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유료 콘텐츠 무제한 청취가 가능한 월정액 상품 등 추가 수익 모델이 계속 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네이버는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나우’에서 아이돌, 래퍼 등 다양한 뮤지션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방영 중이다. 네이버 제공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거나 영화, 드라마 못지 않게 탄탄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콘텐츠의 다양화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이은영 리더는 “해외에서는 오디오 예능, 토크쇼, 다큐, 드라마 등 새로운 즐길 거리들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밀레니얼 세대들의 유입이 빨라지고 있어 웹툰이나 웹소설 기반의 드라마, 스낵컬처(과자처럼 짧은 시간 간편하게 소비하는 문화)의 특징을 갖는 오디오 예능 등 다양한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1981년 8월 1일 음악과 뮤직비디오 전문채널로 등장한 미국 케이블채널 MTV는 개국 첫 방송으로 버글스의 노래를 내보냈다. 당시로서는 ‘한물 간’, 혹은 ‘한물 갈’ 라디오의 자리를 이제 방송이 차지할 것이라는 선언이자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일상의 BGM’으로 보기 좋게 부활한 ‘오디오’ 앞에서 MTV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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