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아르헨티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때 일이다. 남미까지 대통령 전용기로 한 번에 갈 수 없는 만큼 경유 국가로 체코가 선택됐다. 하지만 보수 유튜브 채널에선 “체코에 갈 필요 없는데 관광하러 갔다” 같은 영상을 퍼뜨렸다. 야당과 보수 일간지는 이런 주장을 확대 재생산했다. 보수 식자층의 술자리 안주가 됐다. 결국 체코 원전 수주 지원 목적, 서쪽 방향 비행이 시차 조절에 유리하다는 상식 등을 언론이 보도하고 나서야 허위정보 유통은 사라졌다.
이런 상황이 처음은 아니다. 문 대통령 집권 후 해외 순방 때마다 반복됐다. 다른 정치ㆍ사회 현안도 허위정보를 바탕으로 유튜브 방송을 내보낸 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책임하게 넘어가는 일이 되풀이됐다. 기성 언론은 미디어비평과 언론중재라는 최소한의 장치가 있지만, ‘표현의 자유’를 악용한 유튜버를 막을 뾰족한 수단은 없다.
국내에는 이미 500개 이상의 유튜브 개인 뉴스 채널이 개설됐다. 올해 시사IN의 언론매체 신뢰도 조사에서도 유튜브는 12.4% 지지로 2위를 차지했다. 2017년과 2018년 같은 조사에서 각각 0.1%, 2.0%였던 데 비하면 약진이다. 찬반은 나뉘나, 유튜브는 이미 저널리즘 대접을 받고 있다.
“유튜브는 기성 언론이 불신 받는 틈을 타 기성 언론이 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구독자가 원하는 내용으로 자동 추천하는 이용자 중심 미디어가 됐다. 이 때문에 확증편향과 부정성편향, 이야기편향의 광장이 되어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우려가 있는 상황이다.” (이상호 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19일 ‘유튜브 저널리즘의 현황 진단과 새로운 모색’ 토론회)
기성 언론은 외면 받고 윤리와 검증이 빠진 허위정보는 잘 팔리는 시대다. 십수년째 지속되는 ‘악화의 양화 구축’ 흐름이다. 물론 기성 언론의 잘못된 관행이 이런 토양을 키웠다. 뉴스 보도 과정에서 오보와 오류, 실수, 과장도 많았다. 이에 대한 질책은 따갑게 받아들이고, 절차탁마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차별화 노력, 공을 들인 기사와 콘텐츠를 키워주지 않던 이들이 언론을 일반화해 쓰레기로 매도하는 상황도 옳지 않다. 문 대통령 집권 초 탄핵과 촛불에 일조했던 언론이 다시 정권 감시자로 돌아서자 이를 겨냥한 공격이 집요하게 이어졌다. “조중동과 극우 유튜브 채널은 원래 그런 곳”이라고 버려둔 채 엉뚱한 곳에 포화를 집중했다. 환멸을 품은 기자들이 다수다. 그런 분열과 분화를 틈타 혹세무민 유튜버가 창궐했고, 숨 죽였던 일부 기득권 매체는 속으로 즐기는 형국이다.
서초동 촛불집회의 타깃은 검찰과 언론이었다. 하지만 28일 밤 100만 이상이 모여 외쳤던 검찰개혁이 실현되기 위해서도 이간계에 속아 조리돌림을 하며, 우호세력의 목까지 치는 우를 범하면 안 된다. 이들에 휘둘릴 시간에 허위조작정보 대처에 더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언론 보도를 볼 때 누가 소스를 제공했나, 사실로 인정할 만한 팩트는 무엇인가, 기사에 쓰인 것처럼 해석될 수밖에 없나 이 세 가지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독자 노릇 하기 힘들지만 이걸 꼼꼼히 살펴보지 않으면 바보 된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28일 강연 중 일부다. 그는 기성 언론 전반을 공격하기 위해 이리 이야기했겠지만, ‘깨어 있는 뉴스 콘텐츠 소비자’라면 이 원칙을 응용해 옥석을 구분하리라 믿는다.
또 하나. 언론은 여당도 야당도 아니다. 특정 정당과 정파적 가치를 위해 싸우지 않는 게 기본이다.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뒤로 물러나 있다고 해서 비겁하다 탓해선 안 된다. 이번 조국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 국면에선 감시자(watchdog)라는 언론 기능을 과도하게 사용한 측면도 있다. 그렇다고 기자들의 비판의식이 위축돼선 더욱 안 된다. 특권ㆍ반칙 세력만 기뻐할 일이다.
정상원 디지털콘텐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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