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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잡으러 왔다가 장가들고 간판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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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잡으러 왔다가 장가들고 간판도 걸었습니다”

입력
2019.09.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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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거쳐 울릉도에 정착한지 반백년 태양상회 대표 송종욱씨

송종욱 태양상회 대표가 마른 오징어를 정렬해 귀를 맞추는 등의 방식으로 엮고 있다. 류수현기자 suhyeonryu@hankookilbo.com
송종욱 태양상회 대표가 마른 오징어를 정렬해 귀를 맞추는 등의 방식으로 엮고 있다. 류수현기자 suhyeonryu@hankookilbo.com

“오징어잡이 배를 타면 돈이 된다”는 말을 듣고 울릉도에 들어왔다가 완전히 정착한 팔순 노인이 있다. 주인공은 태양상회 대표 송종욱(82)씨. 인생의 절반이 넘는 세월을 울릉도에 있으면서 간판을 내 건지도 40년이 넘었다. 그는 마른 오징어와 호박엿 취나물 명이나물 무침 등 울릉 특산품 20여종을 판매하고 있다.

그는 “5년전만 해도 500원하던 오징어 한 마리가 지금은 2,000원에 육박한다”며 “관광객은 늘었지만 오징어도 씨가 마른 듯 물량이 줄어 안타깝다”고 29일 밝혔다. 그러면서 “많게는 오징어를 100마리도 사가던 사람들이 최근 들어 20마리도 고작 사는 정도”라고 덧붙였다.

대전에서 태어난 송씨가 울릉도에 들어온 것은 50여년전. 제주 서귀포에서 솜을 팔던 그가 ‘오징어를 잡으면 돈을 많이 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그는 제주 생활을 정리하고 울릉도에 들어와 배에 올랐다. 당시 오징어잡이 배는 길이가 5m 남짓, 승선원도 선장 포함 모두 3명에 불과했다. 엔진도 없는 나룻배 수준인 탓에 직접 노를 저어 4km 가량 거리를 항해했다. 특정 지점에 도착하면 낚시 바늘을 던진 뒤 건져 올리는 방식이었다. 50~60마리 정도가 만선이었다.

하지만 배 멀미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송씨는 “노를 잡아본 적도 없는 데다 배 멀미가 너무 심해 견딜 수 없었다”며 “엎드린 채로 배를 탔다가 돌아오면 녹초가 되는 게 일상이었다”고 회상했다. 한바탕 곤혹을 치른 뒤 그는 낚시바늘, 야광미끼 등 오징어잡이 도구로 눈을 돌렸다. 수소문한 뒤 가게를 찾아 일을 시작했고 주변의 소개로 결혼까지 한 것. 그가 완전히 울릉도에 정착한 것이다. 송씨는 “친척도 연고도 없지만 울릉도 생활이 좋다”며 “울릉도는 공기도 맑고 물도 깨끗한 데다 해풍이 불어도 육지처럼 끈적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배우자의 선대의 업을 이어받았고 상호도 ‘태양’으로 붙였다. 송씨는 “울릉도에 처음 발을 디딜 때와 지금은 사람과 건물 등이 많이 달라졌지만 탁 트인 바다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육지를 떠나온 지 반백년, 그는 완전히 울릉군민이 됐다. 송씨는 “세월이 많이 지나 사람들도 울릉도의 모습도 변했지만 태양상회는 이름처럼 변함없을 것”이라며 “울릉의 특산품을 지키는 가게로 오랫동안 남겠다”라고 다짐했다.

류수현기자 suhyeonry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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