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위협을 느낀 애플, 디즈니까지 가세하고 있는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시장에서 토종 기업들의 합종연횡이 계속되고 있다. 먼저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가 손잡은 ‘웨이브’가 출범했고, CJ ENM과 JTBC도 합작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이들은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에 대항할 경쟁력을 키워 국산 콘텐츠 산업의 생태계를 강화하겠다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각자의 장점이 담긴 콘텐츠가 두 진영으로 분산되고 오히려 인기가 보장되는 콘텐츠들은 넷플릭스에 모여 있게 될 경우 넷플릭스만 수혜를 입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18일 SK텔레콤 ‘옥수수’와 지상파 ‘푹’을 통합해 출시된 웨이브는 하루 평균 유료가입자 증가 건수가 통합 전보다 3배가량 증가했다. 베이직(월 7,900원), 스탠다드(월 1만900원), 프리미엄(월 1만3,900원) 중 어떤 요금제에 가입하더라도 영화 1,000편을 감상할 수 있는 혜택과 SK텔레콤 가입자들 중 옥수수 이용자들이 웨이브로 전환 가입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웨이브의 앞으로 5년간 콘텐츠 제작 투자 규모는 3,000억원이다. 넷플릭스의 연간 투자금 15억달러(약 1조8,000억원)와 비교하면 미흡하지만, 국내 OTT 중에선 가장 큰 투자다. 여기에 우리말로 제작된 지상파들의 드라마, 예능 등 국산 콘텐츠가 기본적으로 매일 추가되게 돼 있다. 웨이브를 운영하는 콘텐츠웨이브의 이태현 대표는 “국내에선 국산 콘텐츠를 중심으로 소비가 이뤄지고 있어 경쟁할 만 한다”고 자신한 바 있다.
웨이브가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 보여줘야 할 능력은 콘텐츠 제작 능력이다. 지상파의 콘텐츠 인기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어 ‘반전’이 필요하다. 올해 웨이브 투자는 100억원인데, 이 금액이 전량 투입된 드라마는 오는 30일 KBS 2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녹두전’이다. 사실상 녹두전 ‘다시보기’ 수준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당초 웨이브에 CJ계열 콘텐츠 포함 여부가 주목됐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규모 콘텐츠 투자는 장기적인 프로젝트여서 좋은 콘텐츠를 이미 쥐고 있는 업체들과의 협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옥수수에서는 CJ계열 콘텐츠가 제공되고 있었기 때문에 웨이브가 이를 그대로 품으면 상당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잇따랐다.
하지만 결국 웨이브에서는 CJ계열 콘텐츠뿐 아니라 JTBC 실시간 채널도 빠졌다. CJ ENM과 JTBC가 CJ ENM의 OTT ‘티빙’에 JTBC 콘텐츠도 합쳐 제공하는 방식의 통합 OTT를 내년 초에 출시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OTT업계 관계자는 “웨이브에 CJ 콘텐츠를 넣기 위해 3차례 논의가 있었고, JTBC도 웨이브 지분 참여 논의가 있었지만 결국 둘 다 빠지게 된 것”이라며 “JTBC는 웨이브에서 실시간 외에 주문형비디오(VOD)는 제공되고 있는데, CJ와 통합 OTT 서비스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웨이브에 어디까지 수도꼭지를 잠글지 모른다”고 말했다.
닐슨코리아와 CJ ENM이 포털 검색자 수, SNS 언급 건수, 동영상 조회수 등을 200점 기준 표준점수로 환산해 산출하는 콘텐츠영향력지수(CPI) 9월 셋째 주 분석 결과 상위 15위 중 CJ계열(6개)과 JTBC(2개) 콘텐츠는 8개였다. KBS(3개), SBS(4개), MBC(0개) 3사 합산 개수는 7개다. CJ-JTBC 진영이 경쟁 OTT에 배타적 원칙을 세운다면 웨이브로 만족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
반면 넷플릭스에는 꾸준히 국산 콘텐츠가 추가되고 있다. 지상파는 올해부터 ‘배가본드’(SBS) 등 연간 대작 두 편씩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는 형식으로 넷플릭스에 동시 공급 중이다. ‘아는형님’(JTBC), ‘슬기로운 깜빵생활’(tvN) 등 JTBC와 CJ계열 인기 콘텐츠도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나혼자산다’(MBCㆍCPI 16위), ‘런닝맨’(SBSㆍ13위) 등 장기 지상파 인기 프로그램 애청자는 웨이브에 만족할 순 있다. 하지만 다양한 시청을 원한다면 CJ-JTBC 통합 OTT에도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양쪽에 돈을 내느니 일부이긴 하지만 인기작 중심으로 즐길 수 있고 유명 해외 드라마도 볼 수 있는 넷플릭스를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OTT업계 관계자는 “OTT 기업들이 규모화로 가야 한다고 모두 판단하고 있다”며 “다만 단번에 모두를 아우르는 대형 토종 OTT가 탄생하기 힘드니 당분간은 규모화 경쟁 거치며 콘텐츠 생태계 선순환 구조부터 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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