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활용하려면 北 동의 필요, 물밑 채널로 공유한 듯
김정은에 ‘비핵화 결단’ 촉구 의도도… 北 비난 없어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문이 발표 전 북한과 공유됐던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연설문에는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어가자”는 제안이 담겼다. 연설과 관련해 북측이 이후 별다른 비난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구상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지난 24일(현지시간) 제74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기에 앞서, 연설문에 어떤 구상과 제안이 담겼는지가 북한에 전달됐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를 실천해 나간다면 국제사회도 이에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DMZ에 국제기구를 설치하자는 구상을 제시했다. DMZ에 매설된 지뢰를 ‘유엔지뢰행동조직’ 등 국제기구가 남북과 함께 제거하자고도 했다.
유엔 회원국을 향한 메시지이긴 하지만 DMZ 활용을 위해선 북측의 동의와 협조가 필수적인 만큼, 북측에 관련 내용을 사전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청와대는 판단한 듯하다. 앞서 지난해 4ㆍ27 판문점선언에도 DMZ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만들어가자는 선언적 내용이 담긴 만큼 비전을 구체화할 방안이 절실하다. 아울러 연설문의 내용과 배경을 사전설명한 데는 북한이 유의미한 비핵화 조치를 결단토록 촉구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직접 밝혔듯 ‘DMZ 국제평화지대화’의 핵심은 “북한의 안전을 제도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장”하는 것에 있다.
연설문 공유 시점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의 발표 직전 이뤄졌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 여부 결정은 약 2주를 남긴 시점에서 이뤄졌다. 당초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하기로 돼 있었으나, 북미 협상이 재개되려는 조짐이 보이자 문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지난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등 공식채널을 통한 남북 간 의미 있는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연설문 공유는 ‘물밑 채널’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연설 내용을 사전에 알리긴 했지만, 연설문에 북한의 입장이 반영된 건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과 조율을 거쳐 발표한 건 아니란 것이다. 남북은 소통 채널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이라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북한의 안전보장을 위해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구상에 북한이 암묵적 동의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는 조심스럽게 나온다. 북한은 연설 후 사흘 째인 이날까지 관영 또는 선전매체를 통해 문 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비난하지 않았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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