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2000년 제43기 국수전’서 이창호 9단과 조훈현 9단 꺾고 세계 최초 혼성기전 우승
최근 일본서 열린 ‘제28기 용성전’서 우에노 3단 준우승…루이 9단 자취, 강제 소환
이달 끝난 ‘제3회 안동시 참저축은행배’에선 최정 9단 4강 진출하면서 기염
루이 9단, 현재 50대 중반임에도 중국리그서 왕성한 활동…후배들에 좋은 본보기
루이나이웨이(맨 왼쪽) 9단이 2000년2월 열렸던 ‘제43기 국수전’ 결승에서 조훈현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지난 23일 저녁, 도쿄 일본기원엔 현지는 물론이고 세계 바둑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제28기 용성전’(우승상금 600만엔) 결승전이 열린 이곳에선 우에노 아사미(18) 3단과 이치리키료(22) 8단의 치열한 난타전이 펼쳐졌다. 종합기전인 용성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이자, 일본 바둑계 차세대 주자인 이치리키료 8단과 여자 프로바둑기사인 우에노 3단의 첫 결승전이란 관점에서 바둑팬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결승에 진출한 우에노 3단은 특히 자국내 타이틀 획득 경험을 가진 다카오 신지(43) 9단과 무라카와 다이스케(29) 9단, 쉬자위안(22) 8단 등을 재물로 삼으면서 기대감도 극대화 시켰다. 그 동안 연령이나 성별 등에 제한 없이 모든 선수의 참가를 허용한 종합기전에서 여자 선수가 결승전에 오르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하지만 부담 때문이었을까. 우승 트로피는 이번에도 여자 기사를 외면했다. 접전 끝에 이치리키료 8단의 우승으로 용성전은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트라이트는 패자인 우에노 3단에게 쏠렸다. 두 선수의 맞대결은 종합기전에서 남자 선수를 상대로 벌인 일본내 여자바둑기사의 첫 결승전으로 기록됐다.

스포츠에서 여성이 남성을 넘어선 사례는 드물다. 상대적으로 체력적인 측면에서 불리한 데다, 기본적인 인력풀 자체에서도 열세인 게 현실이다. 두뇌 스포츠인 반상(盤上) 세계 또한 유사하다. 적어도 ‘철녀(鐵女)’로 잘 알려진 중국의 루이나이웨이(56) 9단이 등장하기까지 이런 흐름은 바둑계에서도 불문율처럼 통했다.

2000년2월 열렸던 ‘제43기 국수전’에서 우승한 루이나이웨이(맨 왼쪽에서 두 번째) 9단과 조훈현(네 번째) 9단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루이 9단의 존재감은 새 천년인 2000년 벽두부터 확실하게 각인됐다. 그 해 2월 ‘돌부처’ 이창호(44) 9단을 물리치고 올라온 루이 9단이 ‘제43기 국수전’(우승상금 4,500만원) 결승에서 당대 세계 바둑계의 간판스타였던 조훈현(66) 9단마저 2승1패로 꺾고 첫 종합기전 타이틀까지 차지한 것. 루이 9단이 조훈현 9단에게 우승컵을 가져갈 것이라고 예상한 시각은 사실상 전무했다는 점에서 대형사고임에 분명했다. 조훈현 9단은 당시만 해도 바둑계 황제로 군림하면서 각종 국내외 기전에서 우승컵을 쓸어갈 때였다. 조훈현 9단과 단 1개의 여류국수 타이틀만 꿰차고 있던 루이 9단과는 비교 불가였다. 하지만 둥근 바둑돌은 세간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었다. 천하의 조훈현 9단은 대국 직후 “루이 9단의 힘이 엄청 좋다”며 “전투력이 장난이 아니다”고 혀를 내둘렀다. 루이 9단이 ‘철녀’로 불려진 이유다. 찬사도 쏟아졌다. 루이 9단은 국수 등정으로 당시 영부인이었던 이희호 여사에게 “여성으로서, 그리고 특히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쾌거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 드린다”는 내용의 축전까지 받았다.

루이 9단의 두 번째 역사는 2004년, 역시 혼성기전으로 열렸던 ‘맥심 커피배 입신(入神) 최강전’(우승상금 5,000만원)에서 쓰여졌다.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의미의 ‘입신’ 9단들만 참가 가능한 이 대회에서 루이 9단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잘 알려진 유창혁(53) 9단을 돌려세우고 또 다시 우승컵을 수집했다. 유창혁 9단은 한 때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 서봉수(66) 9단 등과 함께 국내 바둑계의 ‘4대 천하’를 구성한 인물이다. 유창혁 9단은 전성기 시절엔 후지쓰배(1993년)와 응씨배(1996년), 삼성화재배(2000년), 춘란배(2001년), LG배(2002년) 등을 모두 휩쓸면서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기록까지 작성한 한국 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창혁 9단도 루이 9단의 두 번째 역사의 희생양으로 남았다. 루이 9단은 지금까지 들어올린 총 29개의 우승 트로피 가운데 2개를 혼성기전에서 획득했다.

루이나이웨이(맨 왼쪽) 9단이 지난달 15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열렸던 ‘한국여자바둑리그’에 서울 부광약품 소속으로 출전, 강지수 초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루이 9단의 전성기 시절 활약상은 최근 국내에서도 최정(23) 9단에 의해 강제 소환됐다. 이달 20일 막을 내린 ‘제3회 안동시 참저축은행배 세계바둑페스티벌 프로·아마오픈전’(우승상금 3,000만원)에서 4강까지 진출하면서다. 국내 랭킹 22위(9월 기준)인 최정 9단은 이 대회에서 우승자인 홍성지(32·17위) 9단에 막혔지만 한국 여자기사로선 처음으로 종합기전 4강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비록 국내 랭킹 1,2위인 신진서(19) 9단과 박정환(26) 9단이 불참했지만 최정 9단은 세계대회 우승 경험의 강자인 강동윤(39·12위) 9단 등을 물리치면서 이변(?)에 대한 가능성도 점쳐졌다. 종합기전에서의 우승은 다음 기회로 미뤄졌지만 세계 여자랭킹 1위인 최정 9단에게서 루이 9단의 추억이 떠올리기엔 충분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루이 9단의 진짜 가치는 ‘내구성’이란 점에 입을 모은다. 50대 중반임에도 불구하고 루이 9단은 여전히 현역기사로 반상에서 뛰고 있다. 중국 여자바둑갑조리그에서 당당히 활동 중이다. 자국내 전체 남·녀 프로바둑 기사 순위를 합친 중국 전체 랭킹에서 루이 9단은 105위에 마크돼 있다.

전성기는 지났지만 바둑계에선 여전히 루이 9단의 기량은 높게 평가 받고 있다. 루이 9단이 올해 열렸던 국내 여자바둑리그에서도 용병 선수로 영입된 배경이기도 하다. 국가대표 코치인 홍민표(35) 9단은 “지금까지 바둑에 대한 열정만 놓고 볼 때 루이 9단을 넘어선 기사를 찾아보긴 어렵다”며 “아직도 바둑에 대한 연구와 노력 등에 대해선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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